겨울

by 물빛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날씨로 말하자면, 수능 추위란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따뜻하다가 추위가 늦게 찾아온 이상기후를 보인 겨울이다. 그러니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재작년 봄에 여성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갱년기증상이 심해졌고 치료가 필요했다. 큰 부작용을 피하려고 선택한 약물이 내게 선물한 것은, 온몸에 혈액이 순환되는 짜릿한 느낌과 따뜻한 온기였다. 한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어야만 잘 수 있는 오랜 수족냉증의 대표주자인 나에게 환상적인 효과였다. 한여름에도 반바지에 슬리퍼차림을 할 수 없던 내가 맨발로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다시 이십대로 회귀한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켰다. 좋은 일에는 나쁜 일도 따르는 법 아닌가. 단기간의 급격한 체중증가도 함께 부록으로 왔다. 약을 먹는 것은 1차적으로는 내 몸을 살리기 위한 역할이다. 하지만, 내게 맞는 약물을 찾는 과정은 내 몸 자체가 약물의 테스트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체중증가는 혈압상승으로 이어졌고, 약물을 바꾸어가며 적응해 보려던 노력은 결국 중단해야만 했다. 지지난 겨울은 약효가 남아 있어서인지 그리 춥다고 느끼지 않고 지나갔다.


몸은 신비롭게도 아주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담당의는 작년 여름부터 체중조절제를 처방해 주었다. 이전 겨울부터 먹어야 했던 혈압약은 혈압을 정상혈압보다 살짝 높게 유지시켜 주었는데, 내 신체조건에서는 괜찮은 것이라고 했다. 체중이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혈압도 같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이 되면서, 야외행사를 나가다 보니 기립성저혈압마저 발생했다. 그럼에도 혈압약은 반으로 용량을 줄이더라도 딱 끊어서는 안 된다. 호르몬의 문제는 신진대사가 자발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각각에 대한 약의 용량을 조절해서 컨트롤해야 한다. 그래도 체중이 점점 줄어들고 몸이 가뿐해지니 한결 움직임이 원활해져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추위가 매섭기는 했다. 그래도 몸이 예년과 다르게 반응했다. 키치조지의 이노카시라 동물원과 호수에 간 날도 아주 추운 날은 아니었다. 기온은 영상이고 하늘이 정말 예쁜 날이었다. 어그부츠도 신었는데, 발이 아플 만큼 얼고, 동전을 세어 키오스크에 넣지 못할 만큼 손가락이 얼었다. 아이에겐 그늘로만 다닌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실은 내 몸이 이상한 것이었다. 광안리를 산책할 때도 그랬다. 니하이 부츠를 신고, 롱패딩을 입은 날인데, 귀가 꽁꽁 얼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내 몸에 적합한 호르몬은 없으니까, 그냥 그 겨울을 버텨야 한다는 게 문득 서러웠다.


매섭고 서러운 겨울을 보내며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동네 병원에 다닌 지 10년이 넘는데, 원장선생님이 몸 상태가 이런 것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회복하는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서 쉬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에너지를 모아서 써야 하는데, 자꾸만 건강상태로 주저앉는 내가 못마땅했다. 한 계절을 지나기 무섭게 병원을 찾아야 하고, 가야 하는 병원이 또 늘었다.


이상기후를 보였던 봄과, 무덥던 여름을 지나며 또다시 겨울이다. 일본에 아이의 집을 구하고, 이사를 들어가던 날도 눈이 많이 내렸다. 4월 초였다. 입학식에서 교수님들이 이상기후로 인해 날씨가 이상하다며 다들 한 마디씩 했더랬다. 그리고 오늘 낮부터 함박눈이 온다고 아이는 강아지마냥 신이 났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초딩이냐고 놀렸단다. 그래도 일생을 부산에서 산 아이에겐 마냥 신나는가 보다. 이 겨울도 매섭게 시작이다. 어그부츠를 장만하고, 아이들의 겨울옷을 챙겨보면서, 엄마는 또 혼자 염려를 한다. 아이는 미끄러운 겨울길을 잘 다닐까. 추운데 혼자 아프지는 않을까. 아이의 건강이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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