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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Jan 14. 2024

어제 내가 한 농담처럼

농담쟁이가 되고 싶어요

'. 소가 웃는 소리가 뭔지 알아?

'?'

'우하하'

'ㅋㅋㅋㅋㅋ'

'소가 단체로 노래 부르면 뭐게?'

'??'

'단체 소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등학교 시절, 매일 시시껄렁한 농담을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던 친한 오빠가 하나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내게 사귀자고 했다. 나는 맹세코 그에게 일말의 이성적인 호감도 없었던 터라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는 당연히 나도 자기를 좋아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같이 시시껄렁한 말들을 주고받는 게 애정이라 생각했을까. 어찌어찌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와 사귀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빠. 사실 나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니 이제 시시껄렁한 소리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어? 어.. 알았어."

 그는 당황하며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그전까지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이 다 시시껄렁한 농담들 뿐이었다. 그런데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니 그와 나누는 그런 대화들이 싫어졌다. 그 뒷얘기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는 농담을 하지 않으니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진땀을 뺐고, 나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재미가 없었다. 결국 얼마 못 만나고 헤어지고 말았다.

 

농담: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그렇다. 나는 어릴 적부터 농담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머러스한 말들도 곧 잘 하긴 했지만 내가 뱉는 유머들은 대부분 비유적이거나, 풍자적이거나 또는 이중적인 말들이었다. 그것도 가끔 분위기를 띄워야 할 상황이 되면 하는 말들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는 자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실없는 소리가 오가는 것이 싫었다. 결혼 전엔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 후엔 가족들 속에서 나는 주로 진지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었다.

 

실없다 : 말이나 하는 짓이 실답지 못하다.
실답다 :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되고 미더운 데가 있다.


 돌아보면 언제나 나는 실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되고 미더운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친구들은 나를 '늠름이'라고 불렀다. 어르신들은 항상 의젓한 내 모습을 좋아했고, 어딜 가든 신의가 있는 사람인 양 대우받았다.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럴수록 나는 여느 사람과 똑같은 나의 약한 부분을 자꾸만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용기를 내어 내게 있는 약함을 꺼내면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슬쩍 꺼내놓았다가도 후다닥 다시 집어넣고 단단한 모습을 꺼내 놓았다. 또래 친구들은 물론, 언니들도 주로 내게 기대고 싶어 했다. 그게 버거워서 어느 순간부턴 '나는 네가 기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보내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차가운 사람이 되기도 했다.

 올해 들어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왜 그리 실없는 소리들을 싫어했는지, 아이처럼 천진한 시간들을 보내지 못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심리학책을 몇 권 읽어 보았다.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은 모건 스캇 팩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었다.) 책들을 읽다 보니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어른아이의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집은 한부모 가정이 되어버렸고, 나는 가족 구성원 중 가장 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제적인 정서적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면서 나의 이런 성격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 들어봐 봐."

 얼마 전,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둘째가 곁에 앉아 말을 걸었다. 녀석의 취미는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말장난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회를 가장 잘 뜨는 곳은 어디게? 회전문!

화장실에서 방금 막 나온 사람은 누구게? 일본사람!

직접 만든 총은 뭐게? 손수건!"

 이런 식의 농담들이다. 내가 웃으면서 한두 마디 추임새를 넣었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쉬지 않고 계속 실없는 문장들을 꺼내 놓았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신이 나서 농담을 이어가는 걸 보며 대단하다 싶었다. 농담을 받아주다 보니 어느새 빨래도 다 개었는데 녀석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제 그만 좀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이 시간을 견디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부엌을 갔다. 거실에서 신난 둘째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최대한 영혼을 담아 추임새를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귤을 한 바가지 담아 거실로 돌아오는데 둘째를 중심으로 주변에 제 멋대로 뒹굴며 웃고 있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막내는 누나 곁에서 제일 크게 킥킥 거리며 누나의 농담을 거들고 있었고, 첫째는 한심하다는 듯 훈수를 두면서도 곁에 같이 앉아 웃고 있었다. 실없는 소리 하기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편까지 합세해 둘째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80년대 만담 콤비와도 같았다. 순간 그 시간이 너무 고마웠다. 천진함이 가득한 이 거실이 너무 예뻐서 귤바가지를 들고 서서 잠깐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그 시간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내가 그 순간 느꼈던 느낌은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것이었다. '실없는 농담 따위는 취급할 수 없었던, 언제나 실다운 사람이어야만 했던 어린 내가 이 아이들의 천진함은 지켜 주었구나.'싶은 그런 마음. 침대에 모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 내 안에 아직 어린 내게 다가갔다.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도닥여 주었다. '참 잘했네. 잘했어. 고생 많았구나.' 하면서.


"비행기 타고 가다가 멀미 나면 창문 열고 밖에다 토해야 되는 거 알지? 안에서 하면 냄새나서 안돼. 승무원이 창문 열어주면 꼭 밖에다가 해."


 어젯밤, 1월 마지막주에 떠날 계획인 가족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한 말이다. 분명 농담이었는데, 세 아이 모두 멀뚱멀뚱하게 눈만 껌벅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빵 터져 버렸다. 아이들은 이게 농담인 것 같은데, 맨날 진지한 소리만 하는 엄마가 뱉은 말이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막내는 "그럼 화장실 가서 하면 되잖아!"하고 옳은 말로 대꾸를 했다.  

 올 해를 시작하며 나는 좀 더 실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 있다. 농담을 잘 던지는 사람, 무거운 생각은 조금만  하고, 가볍고 명랑한 시간들로 하루의 대부분의 채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농담이란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진지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싶지만, 어제저녁시간 불쑥 뱉은 비행기농담을 되새겨 보니 영 가망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혼자 배시시 웃는다.

 엄마의 농담에 아이들이 킥킥거릴 수 있는 그날까지, 내 실없는 소리에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날까지, 뭔 소리든 일단 뱉고 보리라!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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