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사람

감사를 모르는, 그렇지 않은 세상

by 파이프라인

당, 當, 명사 앞에 붙어서, `그', `바로 그', `이', `지금의'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연, 然, '그렇다', '그러하다'라는 뜻

당연 :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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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잃어버렸어요. 찾아주세요."


"선생님, 못 하겠어요. 이것 좀 해주세요." - 도구를 이용하거나 고장 난 물건이 있을 때


학급에서 오랜 시간 지나다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이 익숙해져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하지만 상호 소통하는 내용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본인이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면 물건과 문제를 들고 저에게 다가옵니다. 가끔은 요새 학생들은 친구보다 선생님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들에게 도와달라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태도는 현재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처음에는 찾아오면 "한 번 더 해보고 찾아와."라고 말하다가 지금은 그냥 도와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마자 "해봐도 안 돼요."라고 대답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보지도 않고..."라는 말로 힘 빼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12월이 되면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습니다.


현재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압력은 "친절하라"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학교와 교사들에 하는 이야기를 보면 과거의 안 좋은 학창 시절 경험들로 아직도 학교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는데도 학생들을 존중하는 말을 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아직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가정을 찾아가 식사를 제공하거나 학부모 개인적인 재무 상담 등을 학교에서 한 친절 모범 사례로 홍보하는 영상까지 보게 되었습니다.(해당 영상은 현재 삭제된 상태입니다.)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보이는 모습은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었을 때 그 고마움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당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 선생님에게 물어봐."


"선생님에게 도와 달라그래."


초등학교 1, 2학년 어린 학생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주로 하는 반면, 그 위 학년으로 갈수록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고학년일수록 문제 상황에서 교사에게 전달이 빨라집니다.


"지난번에도 이거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니?"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와주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보지만 학생 입에서는 당당하게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잠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도와달라는 것을 해주기 싫은 제 자신이 꼰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황당하기도 합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나는 할 수 없고 너는 할 수 있으니 나를 도와달라는 태도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엄마, 이것 좀 사줘."


"왜?"


"갖고 싶어."


쇼핑몰을 걷다가 대화를 우연히 듣고는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고 사달라고 말하는 사람의 나이가 적지 않음에 놀라게 됩니다. 성급한 판단일 수 있지만 예전부터 그래왔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고, 내일도 그럴 거라는 당연히 부모에게 요구하는 태도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역사상 유례없이 풍요로운 시기라고 말합니다. 현재 경제 상황은 차치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입는 옷이나 쓰는 물품들의 품질이 모두 좋습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을 찾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지구라는 한정된 자연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제로섬게임에 대가 없이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은 누군가의 노력이고 고마움이고 어느 때는 피와 눈물, 땀의 대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 이면의 모습을 잊고 삽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당연하고 남에게 주어진 것은 나에게도 주어져야 하며 나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고귀한 생명으로 더 편한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착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교육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학교를 예를 들면 예전 세대가 보면 놀랄 만큼 버려지는 쓸 수 있는 학용품을 비롯한 물건들, 급식에서 버려지는 우유를 비롯한 음식, 그리고 돈까지... 잃어버리면 사면되고, 망가지면 버리면 되고, 갖고 싶으면 달라고 해서 받는 게 익숙해진 현실 세대의 문화가 과연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지속가능한 사회, 환경이라는 주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계속 나오는 학습주제이지만 학습 내용과 현실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손만 들고 이야기하면 이루어지는 세상, 이루어져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현재 학생들의 삶 끝까지 이러한 풍요가 이어질 수 있을지 교단에서 저는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상상하기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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