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학생들을 볼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은 아직 헤어질 아쉬움도, 새 학년에 대한 두려움도, 새 친구, 새 선생님에 기대감도 아직 보이지 않지만 담임교사들은 한 학년 진급을 앞두고 걱정이 한 사발이다.과연 내년에 이 학생들이 올라가 만들어 갈 새로운 반은 어떠한 모습이 될까.
그리고 이와 똑같은, 그러면서도 다른 걱정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십여 년 전 이맘때, 아침부터전화가 왔다.(교사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당연히 공개되던 때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요.)
거두절미하고 용건은 간단했다.
"금쪽이랑 내년에 다른 반 되게 해 주세요."
금쪽이는몸에 열이 많은 아이였다.겨울에는 양말을 신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김이 났다. 그 열을 식히기 위해서인지 교실에서 항상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성격이 급해 무엇이든 서두르다 혼자서 넘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신체적인 습관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급해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이 잦았고 친구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귀담아듣기는커녕 오히려 '난 원래 이래', '너나 잘해' 등의 비아냥거리는 말 또는 거친 말을 주로 썼다.
당연히 모든 학생이 짝이 되기 싫어했고 짝이 되거나 같은 모둠이면 학생들의 푸념이 이어졌다.
전화를 건 학부모의 자녀는 거친 금쪽이와 맨날 부딪치는 여학생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금쪽이를 싫어하여 피했지만 그 여학생만은 끝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자리를 멀리 떨어뜨려놓아도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 뒤에서건 복도에서건 싸우거나 여학생이 우는 일이 생겼다.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아이도 역시 금쪽이였다. 그 아이도 다른 아이와 빈번히 부딪쳤다. 말투가 신경질적이고 거칠었고 다른 사람의 작은 일에도많이 간섭하는 성격이었다.
남학생 금쪽이는 좀 더 신체활동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땀이 많이 났고 여학생 금쪽이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꼬집고 앙칼진 소리로 고집부리는 점이 조금 달랐다.
그리고 남학생 금쪽이는 여학생 금쪽이에게 꼬집히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꼬집어도 울지 않고 오히려 크게 소리 지르며 따져대니 힘에서 밀리는 여학생 금쪽이는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년 연속 같은 반이 되는 불운(?)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애 학부모에게 전화 왔는데 다른 반 되게 해 줄 수 있을까?"
다음 날, 어지간해서는 부르지 않는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로 초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원칙대로 해야죠. 전화했다고 바꿀 수는 없고요. 아마 같은 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확실해?"
"저도 혹시 그 두 명 내년에 같은 반 되면 담임선생님 힘들까 봐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니 다른 반 안 되더라고요."
"자기가 학부모한테 잘 이야기해 줘."
얼마나 길게 혹은 자주 연락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진저리가 난 듯한 표정으로 본인에게 온 전화의 답변까지 부탁을 하신 걸 보니 꽤나 진상을 부렸나 보다.
"네."
"안녕하세요. 금쪽이 담임입니다. 학교로 연락 주셨지만 분반은 원칙대로 합니다. 왜 그런지는 학부모님도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봤을 때는 4개 반이라 같은 반 안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일단 기다리세요. 제가 결과 나왔을 때 같은 반이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방학식 전 날까지 연락 없으면 아닌 줄 아시면 됩니다."
"선생님만 믿습니다."
그것이 그 학부모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1/4씩 나뉠 때 당연히(?) 서로 다른 그룹에 들어갔고 다음 해에 전근을 가면서 그 둘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다른 반이 되었으니 이제 서로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깨달았을까.
많은 전화를 받아보았지만 그 전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걔 안 변해요. 그런 애들은 평생 그래."
분반으로그 학부모에게 처음전화받았을 때 들은 말이다.
이미그 아이의 일 년을 겪은 담임교사로서 학부모한테 되묻고 싶었다.
'어머님은 어쩌실 건데요?'
본인은 본인의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그 아이만큼 본인 아이도 다른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본인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본인 아이에 대해 알면서도 차마 말을 못 하고 다른 아이를 깎아내린 건지,적지 않은 나이에 둘째 아이라 알만한데도 그런 말을 해서 당시로서는 묵묵히 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