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by Remind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을 앞둔 사무실의 공기는 미세한 분진처럼 피로로 가득 차 있었다.

일주일 내내 모니터 빛과 키보드 소음에 절여진 신경이 가늘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서윤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정 요청 메일을 처리하며, 마치 데이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파일을 닫으면 두 개의 새 파일이 열렸고, 해결했다고 생각한 문제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주 내내, 그녀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퇴근 시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가 사무실 곳곳에서 하나 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윤은 컴퓨터를 끄는 순간, 팽팽했던 긴장이 탁 풀리며 일주일 치의 피로가 눅눅한 솜처럼 어깨를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텅 빈 에너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도시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서윤의 머릿속에, 문득 시원하고 투명한 물의 감촉이 파문처럼 일렁였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주 내내 자신을 지배했던 무력감과는 전혀 다른 감각.

비록 느리고 서툴더라도, 온전히 내 힘으로 분명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그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서윤은 홀린 듯 수영장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서가 아니라, 지친 자신을 위한 처방전을 스스로 내리듯,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탈의실의 소란스러움과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를 지나 마침내 초급반 레인에 섰을 때, 서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락스 냄새 섞인 시원하고 촉촉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탁했던 머릿속을 헹궈내는 기분이었다.

물속에 발을 담그자,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으로 퍼지는 시원함이 일상의 피로를 밀어냈다.


킥판을 잡고 천천히 발차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이 굳어 엇박자를 냈지만, 몇 번의 발차기 끝에 이내 자신만의 리듬을 찾았다.

첨벙, 첨벙. 아직은 서툴고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두 다리가 만들어낸 힘으로 몸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책상 앞에서 무력하게 가라앉던 내가 아니었다.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던 과거의 나도 아니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이 몸짓.

눈앞에서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과 귀를 채우는 고요한 물소리.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이 작은 추진력이, 일주일 내내 켜켜이 쌓였던 무력감을 부드럽게 씻어내주는 듯했다.


서윤은 그 감각 자체에 큰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

아직 호흡은 잘 못하지만 서서 숨을 쉬고 다시 킥판을 잡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레인 끝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비슷한 속도로 다가오던 누군가가 멈춰 섰다.

낯이 익었다.

같은 초급반에서 늘 서윤의 두어 칸 앞에서 출발하던 단발머리의 여자였다.


“어머, 강습반 분 맞으시죠? 자유수영 나오셨네요.”


여자가 먼저 수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맑게 웃었다.

어색함에 서윤도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잘 안 돼서요. 금방 잊어버릴까 봐요.”

“저도요! 저는 힘만 잔뜩 들어가서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려요. 꼭 물보라만 요란하게 일으키는 것 같고.”


그녀의 구체적인 푸념에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 간단한 사실 하나가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맞아요. 발목에 힘 빼라고 하시는데, 그게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저는 혜진이예요. 박혜진.”

“아, 저는 이서윤입니다.”


어색한 통성명이 오갔지만, 수영모와 수경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는 묘한 동질감이 어렸다.


둘은 잠시 동안 서툰 발차기에 대한 고충과 ‘물 위를 가르고 나가는’ 자세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럼, 좀 더 연습하다 가요, 서윤 씨.”


혜진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물속으로 몸을 맡겼다.

서윤도 다시 킥판을 잡았다.


그날 밤, 서윤은 텅 빈 레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두가 각자의 레인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유려하게, 어떤 이는 자신처럼 서툴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무실에서도, 이 넓은 수영장에서도, 어쩌면 나는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서툰 몸짓으로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감각.


그것은 물에 뜨는 법을 배운 것만큼이나 따뜻하고 든든한, 새로운 종류의 부력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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