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찰나의 호흡, 그 무거움

by Remind

강습이 시작되기 전,

탈의실은 하루의 때를 벗어내고 새로운 물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낡은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던 서윤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혜진이었다.

그녀는 칼같이 다려진 슬랙스에 몸에 꼭 맞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실루엣을 뽐내고 있었는데, 방금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온 사람 같았다.

그녀의 몸짓에는 자신감과 유능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혜진의 화려한 모습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겹쳐지며 서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어, 서윤 씨! 안녕하세요.”


먼저 서윤을 발견한 혜진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네, 안녕하세요, 혜진 씨.”

“다행이다, 늦을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오늘따라 일이 안 끝나서요.”


혜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웃었지만, 서윤은 그 한마디에서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단단함을 느꼈다.

이 사람은 분명, 일이라는 레인을 아주 유려하게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몇 분 후, 수영장 레인 앞에 섰을 때 서윤은 다시 혜진을 마주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세련된 정장은 벗겨지고, 자신과 똑같은 수영복과 수모 차림이었다.

화려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물 앞에서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똑같은 초급반 수강생 박혜진만이 서 있었다.


그 순간, 서윤을 짓누르던 주눈 든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자, 회원님들! 오늘은 발차기와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워볼 겁니다. ‘음-파’ 호흡! 다들 들어보셨죠?”


김영훈 강사의 시범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지만, 서윤에게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물속에서 숨을 모두 뱉어내야 한다는 것부터가 공포였다.


아니나 다를까, 킥판을 잡고 처음 시도한 호흡에서 서윤은 사레가 들려 허우적거렸다.

코와 입으로 벌컥 벌컥 들어간 물에 숨 막히는 감각이 목을 졸랐다.


순간, 일주일 내내 그녀를 괴롭혔던 감각이 덮쳐왔다.

끝없이 밀려드는 업무, 줄지 않는 메일함,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요청들.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익사할 것 같던 바로 그 기분이었다.

물속에서의 허우적거림과 현실에서의 버거움이 뒤섞여 서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레인을 오가던 강사가 서윤의 옆에 잠시 멈춰 섰다.

다른 회원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서윤 회원님, 매일 연습하러 나오는 거 다 알아요. 욕심내지 말고, 딱 하나만 기억해요. 킥판을 앞으로 살짝 누르면서, 거북이가 목을 내밀듯이 고개만 들어서 '파!' 하고 숨 쉬는 거예요. 물속에서 '음-' 하고 다 뱉어야 숨 쉴 시간이 생겨요.”


짧은 조언을 남기고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사소한 관심이 서윤에게는 가라앉던 몸을 받쳐주는 작은 부표처럼 느껴졌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상급반 레인으로 향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유려한 움직임을 보며 목표를 다잡곤 했는데, 그의 부재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그가 있든 없든, 나는 나아가야 했다. 이 어려움을 넘어서야 했다.


서윤은 다시 킥판을 잡았다.

강사의 조언대로, 숨을 쉬려는 욕심을 버리고 킥판을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드는 타이밍에만 집중했다.

물속에서 ‘음-‘ 하고 끝까지 숨을 뱉어냈다.

폐가 텅 비는 불안한 감각.

그리고 킥판을 누르며 고개를 들자, 찰나의 순간 세상의 공기가 입안으로 훅 들어왔다.


완벽한 호흡은 아니었다.

여전히 물을 조금 먹었고, 상체가 들려 하체가 가라앉으면서 자세는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질식의 공포가 아닌, 내 의지로 얻어낸 희망의 숨이었다.

서윤은 멈추지 않고 다시 얼굴을 물에 담갔다.


물속은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니었다.

나아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고요하고 편안한 우주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서윤은 비록 세 번에 한 번꼴이었지만 킥판을 잡고 호흡하며 25미터를 나아갈 수 있었다.


유려한 수영을 하는 할아버지는 없었지만, 서윤은 오늘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동경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한 뼘 더 성장해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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