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에서의 호흡
회사 공기는 언제나 건조하고 탁했다.
오후의 사무실, 후배인 민아 씨가 작은 실수를 했다. 프로젝트 마감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였지만, 김 부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윤을 찾았다.
"서윤 씨가 꼼꼼하니깐, 이거 조용히 마무리 좀 해줘. 민아 씨는 지금 큰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없잖아."
칭찬처럼 들리는 착취의 언어.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묵묵히 모니터 앞에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화가 나기보다 먼저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끝내고 내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싸우지 않는 법을 배운 것처럼, 부당한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쳐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그 흐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은 체념이 아닌, 일종의 자기 방어였다.
야근을 겨우 면하고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혜진이 서윤을 발견하고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수영복과 수모가 아닌, 멋진 오피스룩 차림의 혜진은 역시나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강사님은 왜 그렇게 힘 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요? 나름 힘을 뺀 건데 말이에요."
혜진의 투정에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드 킥의 어려움, 끝없이 반복되는 발차기.
수영이라는 공통의 언어는 둘 사이의 어색함을 빠르게 녹여주었다.
"서윤 씨는 무슨 일 하세요? 왠지 모르게 되게 꼼꼼하고 완벽하게 해내실 것 같아요."
혜진의 말에 서윤은 멋쩍게 웃으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툭, 하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정체된 직급, 반복되는 업무, 후배의 실수를 묵묵히 덮어줘야 하는 답답한 현실까지.
속마음을 꺼내 보인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진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남 일 같지가 않네요."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서윤을 마주 보았다.
"사람들은 제가 번듯한 직장에서 멋지게 일하는 줄 알지만, 사실 저 수영 시작한 거 번아웃 때문이었어요.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힘들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아서 시작한 거예요."
그 순간, 서윤이 짐작을 쌓아 올렸던 혜진의 '완벽한 커리어우먼'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깊은 동질감과 따뜻한 위로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수면 아래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필사적으로 발을 젓고 있었다.
우리 모두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윤의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회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그녀의 직급도 월급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