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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장애와 폭식, 거식증과 이별하는 법

마음이 아플 때 몸이 주는 신호


감정은 방향이 두가지라고 했다.

내 안으로 화살표가 향하는 것과 밖으로 향하는 것.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쌓아두거나 던져버리는 방향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내 안에 쌓아두게 되면 우울이 되고 밖으로 표출하면 분노가 된다. 나를 다치게 하거나 남을 다치게 하는 것, 감정을 풀어가지 못하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다.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음식을 먹고 스스로 게워냈다.

그 시작은 불안이었다. 살이 오르는 내 자신이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은 불안함.

아빠는 내가 어릴 때 음식에 제한을 두었다. 내가 일정 몸무게를 넘어서지 않도록 늘 타박하셨다. 여자는 뚱뚱하면 안된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아빠가 보지 않을 때 음식을 먹는 습관이 들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런 아빠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인생을 저무셨다. 열한살까지 아빠와 지낸 짧은 시간은 이후의 내게 큰 영향으로 남았다.

조금이라도 통통해지면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반에서 친구들이 살집이 있는 여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살이 더 찌면 저들에게 향하는 놀림과 비난이 내게 향할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더이상 내게서 누군가 떠나는 게 몸이 떨릴만큼 불안했다. 





음식을 게워낼 때, 고통과 함께 묘하게 개운함이 들었다. 한동안은 인지하지 못했다. 어떨 때 음식을 과하게 먹고 게워내는지.

돌아보면 무언가 두려운 마음이나 생각에서 스스로 도망치고 싶을 때 집중할 거리를 찾았다. 담배를 피는 동안은 호흡에 집중하듯, 밥을 먹는 동안에는 씹고 삼키는 일에 집중한다. 사실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무언가 두려운 생각으로부터. 하지만 스스로 감정에 직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 회피 -> 폭식 -> 구토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지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는 사람은 단순히 살이 찌는 것이 싫은 게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 내면에 있는 것이다. 구토는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폭력이다. 나는 이 행동을 자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스스로에게 가하는 처벌이기도 했다.


'내 몸은 이런 아픔을 겪어도 돼.'


자신을 함부로 하는 행동을 허용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체벌을 맞으면 몸과 마음이 아픈 것처럼, 구토를 하고나면 몸과 마음이 다친다. 


주위에 거식증과 폭식증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들에게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은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편안한 음악을 틀어놓고 천천히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가령. "만약 하루정도 시간이 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야?" 하고 그려볼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도록 도움을 주는 질문들이면 좋다.

그리고 지지와 격려,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고가는 식사자리라면, 폭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폭식은 마음의 허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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