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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Nov 24. 2022

채식을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자연의 소리, 내 몸의 소리

장바구니에 고기 대신 두부를 넣고, 아침식사로 빵과 계란 프라이 대신 과일을 선택한지도 3년이 훌쩍 넘었다. 묵은 플라스틱 통을 모두 처분하고, 모든 반찬통을 스텐과 유리로 바꾼지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 일회용 생리대 사용은 줄이려 노력하고 면생리대를 쓰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모두 내가 ‘자궁선근증’이란 병을 앓고 나서부터다.


20대, 젊고 푸르러야 할 시절부터 나는 참 자주 아팠다. 여자들이 모두 겪는 한 달에 한번 있는 그 주간만 되면 평범한 여자이기를 거부하는 나의 몸은 통증을 온몸으로 발산했고 늘 약을 먹고 배를 부여잡고 구르는 일이 일상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매달을 고통 속에서 살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여자인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통증의 정도는 기복은 있었으나 늘 찾아왔고, 우연히 가 본 산부인과 검진에서 ‘자궁선근증’이라는 병명을 듣게 되었다. 이 몸상태로는 아이를 낳기 더 힘들어질 테니 어서 결혼하라는 조언과 함께. (자궁선근증은 정상 위치를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자궁내막 조직에 의해서 자궁의 크기가 커지는 질환을 말한다.) 나는 의사의 그 조언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머지않아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산후 몇 달간은 생리통에서 해방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엄청난 출혈과 통증이 나를 비웃듯 다시 찾아왔다.


결혼해서 임신을 하고 출산하고 나니 몸이 불었고 내 식습관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머리로는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관성 탓에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단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으로 울부짖던 몇 년 전 겨울의 어느 날,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 상태가 너무 심해져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살았고, 자궁적출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가는 병원마다 수술을 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껌딱지 아이를 두고 수술로 네 살배기 아이와 며칠씩 생이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즈음 나는 아이를 오롯이 혼자 키워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수술 말고 다른 방도를 필사적으로 찾아야 했다. 그때 몇 해 전 봤던 다큐멘터리가 어렴풋이, 불현듯 기억이 났다. 채식을 통해 자궁질환이 개선된 이야기였다.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해당 다큐멘터리를 찾아본 적도 있지만 이상하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어쨌든 그 기억 하나에 의존해 바로 다음날부터 채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육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환경호르몬의 위해성은 진작에 알고 있어 생리대와 식기를 바꿔본 적은 있지만 꾸준하진 못했고 채식은 더더군다나 해본 적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란 이런 것일까. 더는 갈 곳이 없었기에 무조건 해봐야만 했고 마지막으로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다. 두 달만, 딱 두 달만 해보자, 라며 무작정 시작했다.


첫날부터 당장 먹을만한 게 마땅찮았다. 급한 대로 집에 있는 감자와 당근을 대충 썰어 기름에 발라 오븐에 구웠다. 맛은 없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감자 당근 오븐구이를 해먹은 그날은 통증이 없었다. 이 경험이  나를 지속하게 한 힘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둘이 복닥거리며 지내기도 바쁜데 통증과 싸워가며 생전 해볼 생각도 없던 채식을 하려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고기에 대한 나의 식탐이 가장 큰 적이었다. 삼겹살과 치킨이 내 삶의 낙이었고 소망이었고 행복이었는데, 참으로 애통했다. 어쩌다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 곁길로 빠진 날은 통증이 섬광처럼 찾아와 나를 바로잡아주었다.


모든 채식이 다 내 몸을 살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 특별한 케이스이므로 통증과 출혈 정도로 채식 중에서도 내가 먹어도 될 음식, 아닌 음식을 판가름했다. 가령 굽거나 찌거나 자연 그대로 먹는 것이 튀기고 볶는 것보다 더 몸에 맞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몸 상태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통증이 눈에 띄게 줄었고, 호르몬 조절을 위해 늘 먹어야 했던 피임약 없이도 출혈이 대단치 않았다. 나는 채식이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해당 다큐멘터리, 서적, 유튜브 영상, SNS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비건 레스토랑과 카페 등을 검색하고 하나씩 방문해 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장바구니에 담기는 식재료들이 바뀐 것은 물론, 입고 쓰는 생활용품들까지 서서히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몸과 음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래야만 했고, 내 몸이 바로바로 말해주니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인류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감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공장식 축산으로 소와 돼지, 닭들을 기를 때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전체 온실가스의 18~20%가량을 배출하고 있고, 이는 심각한 기후위기의 큰 원인 중 하나인 것이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기후위기는 인류 공통의 큰 과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교해 1.07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도 넘게 상승하면 지구온난화는 우리가 걷잡을 수 없게 빠르게 진행되며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높아졌을 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 대부분이 극한 고온 위험에 처하고, 물 부족 인구가 최대 50% 증가하며, 기후 영향을 받는 빈곤 취약 인구가 2050년까지 수억 명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문제 현상들이 발생하며 이는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닥친 긴급상황인 것이다.


또한 공장식 축산 자체도 상당히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이었다. 보다 적은 비용으로 축산물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물의 기본적인 습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생산성만을 위해 동물이 길러지고 죽임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항생제나 살충제, 성장촉진제나 호르몬제들이 투여되는데 이는 인간에게도 결코 좋을 리 없다.


고기 좋아하는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매일같이 먹고 지내왔으니 내 건강 역시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내가 왜 아팠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주는 유기적 관계다. 자연에게 해로운 것은 인간에게도 역시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인관관계도 서로 함께 오래 행복하게 살려면 서로가 서로를 잘 배려해야 하듯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많은 것들을 내주었듯, 우리도 자연을 배려하면, 또다시 자연이 그 힘을 받아 우리에게 베풀어 줄 것이다. 자연은 늘 그랬다. 우리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이제 자연도 내 아팠던 몸처럼 한계가 찾아온 거다. 아프다고,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여름 많은 이들의 삶과 터전을 앗아간 홍수가 그랬고, 또 앞으로 찾아올 어떤 기후변화와 재앙이 그럴지 모른다. 우리 세대는 곧 끝나지만 앞으로의 세대는 무한하다. 그러나 그 세대들에게 재난과 재앙을 물려줄 것인가? 펴보지도 못하고 스러질 미래를 선물할 것인가?


3년 전 내가 아팠던 내 몸의 아우성을 무시하지 않고 큰 결심을 한 후 곧바로 감행했던 것처럼, 자연의 아픔 역시 모른척하지 말고 세심하게 매만져 줘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관성에 떠밀려 살아간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 남은 것은 고통과 죽음뿐일 테니까.


식단과 생활습관을 바꾸고서 이제는 매일을 고통스럽게 하던 통증과 출혈이 많이 줄었다. 물론 중간중간 해이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잠시 내려놓고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또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실천한다. 그렇게 계속 가는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편하고 익숙하던 방식들을 조금씩 불편하지만 자연친화적으로 바꾸어 가는 것. 가까운 곳은 걷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며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이어가 보는 것. 그런 작은 노력들이 자연과 인류가 꾸준히 함께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내주어야 할 우리의 마음 한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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