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2
예전에 써놓은 일기장을 뒤적여보면 '제주 정착 실패기'라는 제목의 글들이 여럿 있다. 재작년에 제주도에서 육지로 이사 오는 시기쯤에 썼던 기억이 난다. 처음 제주에 가서 느꼈던 매력들과 살다 보니 겪게 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뒤에 숨겨진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져서 맞벌이와 육아에 대한 한풀이로 끝나는 글이었다.
제주에 정착하려는 과정 중에 하나로 집을 지으려고 했다. 인가에 가까우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땅인지, ALC공법이 습기 많은 제주도 환경에 맞는지, 정원을 밖에서 보이도록 지을 것인지, 정화조는 어느 방향으로 뚫을지를 고민하면서 설계도를 그려가고 있을 때 섬을 떠났다. 꿈꾸던 무언가를 막 시작하려던 찰나에 그만두게 되니 더 아쉬움이 남았다.
집을 지으려던 공간에는 억새만 무심하게 자라고 있었다. 오늘로써 그 땅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새로운 주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집을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제 곧 애조로가 확장이 되면 신제주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아 갈 수 있고 근처에 꽤 힙한 맥주공장이 있어 집을 짓고 살기에는 다시 봐도 좋은 땅이었다. 이제 제주는 아들의 주민등록 초본에서만 나와 관계가 있는 땅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