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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Aug 31. 2020

아빠에게

참, 무심한 딸이 보냅니다.

 아빠에게..


아빠, 정말 오랜만에 아빠에게 편지를 쓰네요. 죄송해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2014년 아빠의 정년 퇴임식 때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당첨되었잖아요. 라디오 DJ음성으로 편지를 읽어드리고, 이제야 드리는 것 같아요.


아빠, 어제 아빠가 계신 시골에 부랴부랴 내려갔어요. 저도 아이들 키우며 지낸다고, 여유 있게 아빠 계신 곳에도 잘 못 와 봤더라고요. 참, 무심한 큰 딸이네요.


 8월 초에 친정 식구들 모두 모여 여름휴가 보내러 시골에 갔잖아요. 아빠가 표정이 약간 어두우신 것 같은데, 젓가락질을 하시는 모습이 왠지 어색했어요. 아빠도 조심하시고, 자연스럽지 않은 손 움직임에 제 마음도 철렁했죠. 아빠도 거의 말씀이 없으셨고, 방에 들어가셔서 쉬시는데 오른팔을 계속 만지시며 주무르셨어요. 뭔가 이상하구나 싶어, 찜질도 해 드리고, 누워서 쉬시도록 했죠. 움직이시다가 힘없이 벽에 부딪히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아빠가 뭔가 지금 다르구나.. 아빠의 뜻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구나.. 이런 일이 처음이라 저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일단 오늘은 주무시고, 내일 병원에 가기로 했어요.

 

 한의원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 약을 먹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질 않아서 막내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갔잖아요. 한 달 전부터 징후가 보였는데, 그동안 미루다 보니까 혈관이 막혔대요. 이미 막힌 부분은 어찌할 수 없고, 다른 혈관들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막는 것만이 남았다고 하네요. 다행히 입원까지는 필요 없다 하셔서 일상생활은 그대로 하지만, 아빠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 같아요. 


 어제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어요. 눈도 잘 안 마주치시고, 말씀도 확 줄었고, 톤도 낮아지셨고. 아빠 성격이 조용하고, 내향적인 편이셔도 자식들, 사위들 오면 웃어주시고, 챙겨주시고 그러셨는데, 어제 아빠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라 죄송했어요. 늘 같은 모습으로 저희 옆에 있어주실 거라 방심하고, 아빠 잘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아빠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는 것이 너무 죄송했어요. 지갑이 없어져서 한참을 찾으시는데, 옷걸이에 걸린 바지 주머니에서 나오니까 더 말없이 위축되시고, 식사 드실 때도 실수하실까 긴장하며 드시는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아요. 아빠는 언제나 남에게 폐 안 끼치려 하시고, 늘 도와주시고, 챙겨주시던 부이셨거든요. 


 오늘도 동생이랑 통화하면서 다른 것보다도 아빠가 기운 없이 우울하신 모습이 걱정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40여 년을 아빠 옆에서 살아왔는데, 이런 모습을 처음 보여주시는 거네요. 전 살면서 힘들면 힘들다 투정 부리고, 힘든 티 내며 살아왔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빠는 힘듦 다 뒤로 감추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계셨더라고요. 


 아빠,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삶이 덧없고, 내가 뭐하고 살았나,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들 하실까 봐, 앞으로의 변화들이 겁나고 두려우실까 봐 마음이 아파요. 누구나 살면서 겪을 일들이겠지만, 우리 아빠가 그런 과정을 겪으신다는 것이 제게도 두렵네요. 제가 이런 마음일진대, 아빠는 지금, 오죽하실까요. 


 아빠, 2014년 12월 30일 기억나세요? 35년 공직 생활을 당당히 마치시고, 정년퇴임식 하셨던 날이죠. 못 배우고, 다른 사람들보다 가방끈이 짧아도, 노력과 성실로 자리를 이어오셨고, 많은 분들의 축하와 인정을 받으며 그 자리에 서셨던, 자랑스러운 날이었잖아요. 이 날 뿐인가요? 이 날이 있기까지 하루하루 노력하고, 뛰어오신 그 모든 날이 눈부시죠. 

 퇴임하신 후에도 계속 일하시면서, 자식들 손 안 벌린다고 농사도 준비하시고, 고민도 많으셨잖아요. 아빠, 이제 앞으로의 삶에서 저희가 더 함께 할게요. 아빠 옆에 세 딸이 있잖아요. 아빠가 그렇게 노심초사, 애지중지 키워주신 세 딸이 있잖아요.


 살갑지 못하고, 한창 아이 키울 땐 아빠한테 원망하고 못된 딸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아빠 고생하신 거 다 알아요. 없는 살림에도 기 안 죽이신다면서 저희 공부 다 하게 해 주시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엄마랑 같이 부업하면서 키워내신 거, 다 기억해요. 제가 고 3 때 친구들이 공부할 때 엠씨 스퀘어 다 쓰고 한다고 한마디 했더니, 얼마 뒤에 그 비싼 걸, 제게 내밀어 주셨잖아요. 고3 때 맨날 몸이 아파서 아빠 맘고생만 죽어라 쓰였는데도 그걸 또 사다 주시고, 그 덕에 제가 대학 간 거죠. 제가 수능 본 날, 밤늦게 약주 드시고 오셔서 불 꺼진 제 방에서 제 손 잡고 우신 거 저, 다 기억해요.


 아빠 몸 더 건강했을 때 기억 소환이 됐어야 하는데, 정말 못난 딸이다, 그렇죠... 어렸을 때는 아빠가 저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생각 못했어요. 엄한 아빠가 무서워서, 화내는 아빠가 싫어서 피하려고만 했죠.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 저도 부모가 되어 아빠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며 저를 다시 살게 하느라 너무 늦었어요. 다시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까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아빠의 변화로,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네요. 아빠가 어떤 사랑을 주셨는지, 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빠가 그렇게 삶으로 노력해 주어 자란 사람인데 말이죠.


 아빠, 우리 지금은 아빠 몸이 다시 건강해지고, 좋은 환경에 있도록 집중해요. 아빠가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시는 동안, 저희가 아빠를 위할 방법을 찾을게요. 아빠 지금 우울하고, 힘든 모습도 괜찮아요. 아빠도 사람이니까 이럴 때가 당연히 있죠. 아빠가 처음 속마음을 보여주신 거잖아요. 저희가 옆에서 힘이 되어 드릴게요. 아빠 옆에 딸들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아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우리, 언제나 함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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