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오프라인 모임에 신이 나서 다녀왔어요. 저녁 어슴푸레해질 때 집 앞에 거의 다 왔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디냐는 말에 집 앞이라 했더니 잘 됐다면서 재활용 갖고 나간다며, 아파트 입구 쪽에서 기다리래요. 추운데 왜 기다리라는 거지 하며 기다리다가 올라가려 했더니, 남편 목소리가 들리네요.
"왜 들어왔어? 잠깐이면 되는데~"
남편 옆에는 자전거와 전동 스쿠터가 합쳐진 전동 자전거가 있었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계속 전동 자전거를 산다고 해서, 그게 굳이 필요한가 했거든요. 자전거가 한대 있어서 동네 다니기도 좋고, 상담실까지도 오갈 수 있는 거리라 요즘 자주 애용하고 있어요. 남편과 같이 써야 할 때는 아쉬우니, 자전거 한 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전동 자전거는 좀 부담되었어요. 그런데, 벌써 남편 옆에 와 있네요.
"상담실 오갈 때 쓰라고. 이거 쓰면 훨씬 편할 거야."
엥? 이 전동 자전거를 나보고 쓰라고? 자꾸 타보라는데 한번 타서 손잡이 꺾었더니 휙 나가요. 무서운 마음인데 얘를 타고 다니라고? 저한테 필요한 걸 묻지도 않고 고가로 사서 주니, 제 마음이 참.. 고마워해야 하는데 저는 마음이 참.. 행복에 겨워 감사한 줄 모른다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돌지만 어째요. 이걸 타고 다닌다는 건 저한테는 부담스러웠어요. 남편이 타고 싶은데 미안하니까 자꾸 저보고 타고 다니라 하는 건지, 제 마음이 영 무거웠네요. 열심히 설명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마음이 복잡했어요.
전동자전거는 현관의 한쪽을 차지했고, 더 무를 수도 없어요. 식구로 맞아야 해요. 그래도 제 표정이 편치 않음을 알았는지, 초 3 둘째 딸이 제게 조용히 말해요.
"엄마, 아빠가 엄마 준다고 거금 들여서 사 왔잖아. 아빠 고생해서 사 왔으니까, 엄마가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고마워해야지. 아빠 마음 이해해줘."
아주 조용히 말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거실로 갔어요. 딸이 저와 남편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 귓가에 남네요. 어쩔 때는 속도 없이 자기 생각만 하고 말하더니, 이럴 때는 또 저보다 어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