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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Dec 01. 2020

요구르트 사 주세요

 제가 20대 중반이었을 때에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볼 일이 있어 마치고, 걸어 나오는 길이었어요. 봄날의 낮이었고,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었죠. 바쁠 것도 없어 한가롭게 햇살을 음미하며 걷고 있었어요. 저와 반대방향으로 모녀가 걸어왔고, 여자 아이는 6~7살쯤 되어 보였어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한 갈래로 단정히 묶은 모습이었습니다. 표정은 뭔가 못마땅한 듯 찡그린 채 엄마를 올려보며,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어댔죠. 제 옆을 바로 스쳐가는 순간,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목말라~~ 요구르트 사줘~~~"


“엄마가 조금 더 가서 사준다고 그랬잖아. 조금만 참아”     

 요구르트를 사달라는 아이의 그 말이 제 귓가에 선명히 들린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어요. 지금도 눈 감으면 그 시간, 그곳으로 돌아갈 만큼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입니다. 걸음도 천천히 떼어졌고, 몇 걸음 못 가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습니다. 계속 엄마에게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모습을 쳐다보았어요. 생각해 보면, 흔하디 흔한 요구르트 사달라는 말이 별 말도 아닌데 저는 왜 이 말이 그토록 끌렸을까요.     


 ‘아, 목마르다는 말을 할 수 있구나. 해도 되는구나. 사달라는 말을 해도 되는 거구나. 나는 왜 몰랐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상담을 하겠다고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목마르니 요구르트 사달라는 말을 해도 되는 줄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저의 실상을 들킨 듯 충격적이었죠. 학교에서 전공서적, 대가들의 이론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정리하며 공부하고, 시험을 봐도 기본적인 욕구 하나 제대로 해결도 못 하고 살아왔던 겁니다.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친구들과 음식을 먹으러 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결정 장애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흔해지기 전부터도 늘 “아무거나, 난 괜찮아, 너 먹고 싶은 걸로”라는 말밖에 몰랐죠. 조금이라도 배려해 준다고 자꾸 저의 의견을 물으면 메뉴 고르느라 진땀을 뺐어요. 혹시나 제가 고른 메뉴가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불안했으니까요. 여러 이유로 저의 취향과 선호를 말하지 않다 보니 저 조차 관심도 없고, 표현해도 된다는 것을 잊고 살게 됐어요. 배려하고, 양보하고, 평화를 위한다고 원하는 것들을 눌렀어요. 삼켜버렸어요. 


 메뉴 고르기만 그럴까요? 삶의 전반에서 보이는 모습이 비슷했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눈치껏 맞추기 위해 제 욕구는 챙기지 못했어요. 저 멀리멀리, 뒷전이었죠. 가족에게도 저를 표현하지 못하고 살다 보니, 더 우울했던 것 같아요. 생기를 잃어버린 거죠. 꽃이 봉오리를 맺고, 자신 있게 ‘나 이런 꽃이야~~’하며 활짝 잎을 펼치잖아요. 저는 봉우리를 펼쳐도 되나, 남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이야기할까 고민만 하며 어정쩡하게 펼친 상태랄까요. 요구르트를 먹고 싶다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그 생기가 강하게 느껴졌어요. 너무도 간단한 한 문장이 제 가슴에 잔잔하고도 깊은 파장이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만큼은 직감적으로 용기가 생겼어요. 이 마저도 못 했으면 어찌 살았을까 아찔해요. 역시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이전까지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누르고 살아왔다면, 다시 제가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란 듯이 길이 열렸어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식 날, 학생생활연구소 벽보에 붙은 집단상담 홍보지를 보자마자 끌렸어요.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서 알아차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슈탈트 상담심리 집단상담 광고였죠. 3일에 30만 원이란 돈이 학생 신분으로 부담됐지만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담 관련 외의 알아차림을 못하는 내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머리로만 배우던 알아차림을 이 햇살 좋은 대낮에,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깨달았어요.      


 알아차림이 별건가요? 배고프면 배고픈 걸 알고, 목마르면 목마른 거 알고, 배부르면 배부른 거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기쁘면 기쁜 줄 알고, 슬프면 슬픈 줄 알고, 화가 나면 화  나는 줄 알고, 분노하면 분노하는 줄 알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경험하는 대로 알아차리는 것. 이런 이야기하면 그다음 훅 들어오는 반응이 있어요.     


“누군 말할 줄 몰라서 참나. 세상은 원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니까, 나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니까 참을 때도 있어야지.”     


 맞아요.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없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너무 잘 알아서 참아왔지만 제 안의 욕구와 느낌, 기분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멀쩡히 제 안에 있는 것들이에요. 내 안의 것이 틀리다 하며 부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라하니 생기가 죽어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건 그대로 보아주어도 돼요. 


‘아, 그렇구나, 네 마음이 그렇구나, 네가 원했던 게 이거구나, 네가 하고 싶었던 거구나...’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어요. 내 마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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