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와락 안겨 울던 날

by 마음상담사 Uni

저의 집은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에요. 집에서 재택근무처럼 일을 보다 보니, 제가 더 나가서 일을 볼 때가 많죠. 유쾌하게 아이들과 잘 보내는 남편이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중2, 초4 한창 예민한 딸들과 부딪칠 때가 있죠. 근데, 엄마랑 싸우는 것과 아빠와 싸우는 것은 조금 차원이 달라요. 제가 화내는 것보다 아빠의 화가 훨씬 파급력도 세고,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급랭이 됩니다.


며칠 전, 그날도 둘째에게 갑자기 문자가 왔어요.


"엄마! 아빠 화났어ㅠㅠㅠㅠㅠ 아빠가 언니한테 무섭게 혼냈어"

순간, 긴장감이 감돌죠. 감수성 예민한 중 2 딸과 무섭게 혼낼 정도로 화가 나 있는 남편의 모습이 스치며, 저는 지금, 여기에 있으니 알 수 없는 머리의 날 섬까지요.. 그래도 어떡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들이 잘 해결하리라 믿고, 저도 일에 다시 집중합니다. 둘째가 놀란 모양이라 마음 달래주고요. 엄마는 밖에 나와서 일해도 집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네요.


밤이 늦어서야 일이 끝났고, 서둘러 돌아갔어요. 이번에는 첫째에게 전화가 왔어요. 잠깐 친구들 만난다고 동네에 나와 있다며, 숏다리만 사서 들어가겠다고요. 이 밤에 숏다리가 당겼는지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이가 밖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뭔가 심란했던 모양이에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첫째와 딱 마주쳤어요. "딸~"하고 반갑게 불렀는데 딸이 저를 보자마자 와락 안겨서 울어요. 목까지 차 있던 울음이었나 봐요.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 아침부터 친구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내색도 안 하고 있었고, 아빠한테 또 한 소리 들으니 설움이 복받쳤나 봐요. 아파트 현관 앞에서 엉엉 우는 딸을 토닥이며, 이 시간을 나눴습니다.

이렇게 울음을 토해내는 아이가 아니었어서 저도 놀랐지만, 또 이 순간이 참 감사했어요. 아이가 밖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저에게 와서 이야기해 주겠구나, 엄마한테 말해야겠다고 믿어주겠구나 싶어서요. 15년을 함께 살아오며, 이 아이에게 마음속 든든한 둥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엄마로서 이 이상 뭘 더 바랄까 싶었어요.


상담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분들은 어디에서도 자기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경우가 많으세요.


"한 번도 이 말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세상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말을 하면 저를 어떻게 볼지 모르니까요."


저 역시도 부모님은 물론이고, 힘든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지 못했어요. 그 유일한 탈출구가 상담실이었고, 그 덕분에 살았기에 지금도 상담에 진심을 담아 일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힘들 때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세상 부러웠던 시간을 지금 딸과 보내고 있으니 감격스러울 수밖에요..

저는 부모님과 나누지 못했지만, 딸은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네요. 참, 다시 생각해 보니, 작년에 40년 인생 최초로 엄마에게 저의 이야기를 했었어요. 때가 한참 늦은 이야기였지만, 엄마가 마음 아파하실 것도 알았지만 말하고 싶었어요. 저도 기댈 곳이 필요했던 거겠죠.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에겐 나의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지구에서 나를 단단히 잡아주는 중력과도 같은 힘 이죠. 부모님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런 상황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겠지만, 걱정 마세요. 누군가 한 사람이 꼭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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