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 시간 넘게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에요. 이야기 나누다가도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표정이 조금이라도 변하고, 눈물이 차오르면 바로 여쭤봐요. 지금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립니다. 마음속에 올라온 감정, 욕구, 생각들을 만나면 마음 여행 중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나옵니다. 이 순간에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진짜 이야기들이 들어있거든요.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마음에서 보물찾기 쪽지만큼이나 반가운 단서인 감정과 욕구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도 자기 마음이 어떤지를 신호로 알려줘요. 욕구와 감정이라는 두 가지 신호를 통해서죠. 앞장 알아차림-접촉 주기에서, 평온한 상태일 때 감정과 욕구라는 형태가 올라오면 이것을 해소하는 사이클을 경험하게 된다고 알려드렸어요.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감정을 긍정 감정, 부정 감정이라고 판단하고, 부정 감정은 표현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담받는 부모님 중에는 아이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며 못하게 화를 내신다고 해요. 그만큼 저희가 자라오면서 내가 느낀 감정, 특히 울음, 눈물, 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 나쁘고 잘못됐다고 배워왔어요. 하지만,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어요. 마음이 어떻다고 알려주는 목소리인걸요. 내가 원했던 욕구와 방향이 맞고 만족스러울 때 느끼는 욕구 만족의 감정, 뭔가 불편하고, 방향이 맞지 않을 때 느끼는 욕구 불만족의 감정으로 나눠서 볼 수 있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감정은 내가 원했던 욕구가 잘 가고 있는지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메시지를 주고 있답니다. 감정이란, 조절하거나 통제해야만 할 것이 아니라 의도를 파악하면 나침반처럼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감정, 뭐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맞아요. 저희가 평소에 쓰는 감정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행복하다, 반갑다, 무섭다, 짜증 난다, 화가 난다, 속상하다, 불안하다 등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감정을 표현하고 알아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요. 오히려 감정을 누르거나 참는 것이 익숙하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올라온 감정을 억압하면 사라지지 않아요.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언제고 기회를 엿봐서 올라오려고 해요. 자기 알아달라고요. 상대방이 실수했을 때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은 아닌데도 불같이 화가 나거나 폭탄이 터진 듯 성을 낼 때 있죠. 이런 상황처럼 그동안 마음에 쌓이고 엉켜있던 감정들이 빵 하고 터지지만 또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요. 그래서, 그때의 마음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주어야 하며, 그것이 누구나 어렵다고 하는 공감입니다. 누군가, 아니면 내가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어야 '안녕'하고 사라져요.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지죠. 감정들이 눌리고, 쌓이고 엉켜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무겁겠어요.
그럼, 공감이 또 어려워지죠. 공감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알려드릴게요. 감정 단어만 있으면 된답니다.
저는 상담을 할 때, 특히 아동, 청소년 상담 때는 시작할 때마다 감정카드로 먼저 시작을 해요. 화나다, 두렵다, 무섭다, 행복하다, 기쁘다 등의 감정단어와 그림으로 상황이 표현된 카드예요. 이 중에 일주일 동안 느꼈던 감정을 찾고, 어떤 상황에서 느꼈었는지 이야기를 해요. 누구나 그 상황을 들으면 그 사람이 그런 마음이었겠다는 것이 공감이 됩니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에 공감을 해 주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상담 동안에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어요. 시중에 나와있는 감정카드는 누구나 구입할 수 있어요.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고, 카드의 장수도 50장에서 많게는 200장까지 있을 정도로 감정은 무척 다양해요. 매번 감정카드를 쓰기 어려우니까 감정단어 목록을 만들어 두세요. 인터넷에 감정단어로 검색을 하면 단어가 쭉 나온답니다. 그 감정단어 목록을 살펴보면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만 찾아봐도 '그래 내 마음이 서운했어, 괴로웠어, 바보 같았어, 속상했어, 기뻤어, 설레었어"를 쉽게 골라낼 수 있어요. 이 순간, 마음이 공감받고 가벼워져요.
감정들이 열심히 알려주는 것이 또한 욕구이기도 해요. 욕구는 인간의 행동을 활성화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들이죠.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살고 싶을까?'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천편일률적으로 일정한 기준들을 정해놓고 그쪽으로 가야 정상, 조금만 벗어나도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여 버렸어요. 다행히 MZ세대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관심을 창작하고자 하는 에너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졌어요. 앞으로의 시대는 개인의 욕구를 존중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사람의 다양한 욕구 역시 알고 있어야 해요.
머리(H. A. Murray)는 다양한 욕구들 중에 음식, 물, 공기와 같이 생존에 필요한 1차적 욕구는 성욕과 감각 욕구예요. 그 외의 인간의 심리적 욕구는 대부분 2차적 욕구로, 다음과 같은 욕구 목록을 정리했어요. 비하(abasement), 성취(achievement), 소속(affiliation), 공격(aggression), 자율(autonomy), 반작용(counteraction), 방어(defense), 존경(deference), 지배(dominance), 과시(exhibition), 위해 회피(har-mavoidance), 열등 회피(infavoidance), 양육(nurturance), 질서(order), 유희(play), 거절(rejection), 감각(sentience), 성욕(sex), 의존(succorance), 이해(understanding) 등이 있어요.
상담실에 마음이 아파서 오신 내담자 분들 중 대부분 복잡한 인간관계와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안고 오세요. 자신이 도움받고 싶은 방향을 정하고,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요. 상담사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속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동행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떠오르는 대로 주고받다 보면, 울컥하거나 멈칫하거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어요. 남들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왔지만 수없이 많은 밤을 홀로 삼켜왔을 감정과 욕구들이 올라와요. 나조차도 모른 채 지나왔던 마음 이야기.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화가 나는 줄도 몰랐어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꼼짝도 못 했어요.."
"적응하려고, 친해지려고 어떻게든 노력했는데 받아주지 않으니까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에게 이야기해도 어쩔 수 없다고만 하시니까 나 혼자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를 잘해야만 인정해 주시니까, 하나라도 틀리면 화를 내셨어요. 다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이지만.. 혼나면 너무 싫으니까 아무 말도 못 했어요. 학교 다니는 내내 긴장하고만 살았어야 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볼까 봐 내내 조심했어요. 한마디라도 들으면 다 내 잘못 같아서 매번 저를 비난하고, 제가 너무 싫었어요. 이런 운명을 타고 난 내가 원망스러웠어요."
마음의 빗장이 열리면서 튀어나온 진심이 그대로 인정받고, 수용받으면요, 얼어있던 수도관이 녹아 봇물 터지듯 울음도 터져 나오고, 씩씩대며 화도 나고, 막 징징대며 아이가 되기도 해요. 그러고 나면,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생기가 살아나요. 저는 이 순간이 상담 중 가장 경이로운 장면이에요. 데미안 소설의 명대사처럼 태어나려는 자, 알을 깨고 나와야 하듯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두터운 막을 부수고 나오는 경험이에요.
상담실이 아니라도 내 마음을 내가 헤아려 줄 수 있으면 돼요. 오롯이 올라온 감정과 욕구라는 생명체에 관심을 주고 관리해 주면, 두터운 방어막을 칠 필요도, 곪고 곪을 때까지 그 상처 달고 살지 않아도 되죠.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떤까요? 어떤 감정을 느꼈고, 무엇을 원하고 있나요? 지금 알아차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