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빠지면 그 분위기로 저도 끌려가는 편이라 열심히 홍보하는 예고편 보면서 결심했죠. '절대 보지 말아야겠다.' 역시나, 묘한 끌림은 절대라는 단어를 쓸 때부터 마음을 흔들렸던 거예요. 5화가 되면서 저절로 손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더라고요. 그 드라마는 제목부터 참 무겁디 무거운 <인간실격>.. 슬픔 따위 저 멀리 던져버린 듯 살지만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류준열 님에 설레고, 슬픔 그 자체로 침몰되어 있는 전도연 님에 가슴 먹먹히 멍하니 보고만 있게 돼요.
출처: 네이버 JTBC 드라마 '인간실격' 명장면 클립 중에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내레이션이 특히 자주 나와요. 그중 전도연 님의 이 대사가 제 마음에 내내 맴돌았습니다.
'아버지, 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되지 못한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하지 못해서, 나를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40이 넘은 저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음일 테고, 상담실에서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말씀들을 많이 들어서이기도 할 거예요.. 그분들 얼굴과 목소리가 오버랩되면서 또 멍하니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몇 달 전, 한여름이 시작되지 전 자전거를 타고 산책로로 퇴근을 하던 중이었어요.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저예요. 그날도 여러 이야기들이 스쳐가다가 20대 초의 제가 생각났어요. 40년의 인생 통틀어 가장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시간인데 최악으로 나를 돌보지 못했던 때였음을 알았죠. 친구들 어울린다고 술도 많이 마셨고, 사랑에 빠져 상대만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어요. 우정과 사랑이란 명분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 나를 버렸던 날들이 있었죠.
'어쩌면 나를 이렇게 돌보지 않고 살아왔을까, 내동댕이쳐 놨었을까, 남들만 생각하느라 내 마음이, 몸이 얼마나 아팠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하게 살아왔던 걸까.'
이 말 끝에 저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매번 남들 눈치만 살피고, 잘못한 건 아닐까 가슴 졸이고, 기분 상한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제가 이제야 저에게 미안해졌어요. 그러면 안 됐었는데, 내가 나를 구하지 못해서, 지키지 못해서 용서를 구했어요. 40이 넘어서야 이 말이 나왔어요.
"미안해.. 용서해 줘.."
당신은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20년, 30년, 40년 그 이상을 살아오면서 24시간 365일 내내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던 나와 어떻게 지내오셨나요? 자신을 가장 많이 보았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당신이잖아요.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으셨나요? 당신이 진짜 바랬던 모습은 어떠했나요? 우리 잠시 만나고 가 보아요. 지금 여기에서요. 지금, 마음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남들 앞에서만 웃는다면 뭔가 방향이 잘못됐다는 거잖아요. 그동안의 삶에서 당신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당신이 자신으로 살지 못했었는지 살펴볼 때에요. 이런 순간이 꼭 한 번은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