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나 청소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해요. 엄마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선입견 앞에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엄마여도 요리 어렵고, 청소 싫은 사람 있다고요. 저의 이런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인스타에 청소 쉽고 간단하게 하는 용품, 얼룩 제거 잘 되는 도구들이 자꾸 뜨더라고요. 한 번은 빨래의 얼룩을 말끔하게 없애준다는 용품의 광고 속 얼룩 제거 영상들을 혼이 빠지게 보고 있었는데요. 보다가 빵 터졌어요. 주의 문구에 아무리 효과가 강력해도 오래된 얼룩은 지우기 쉽지 않다고 써져 있더라고요.
마음속 상처도 오래되면 살면서 여러 일들과 부딪치고 엉키면서 풀어도 풀어도 핵심을 찾기가 어려워요. 저도 저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을 만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어요. 20대 때는 주로 친정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마주했어요. 눈 마주치기도 어려웠던 아버지에게 엄마가 된 제가 소리를 지르고, 왜 이렇게 나를 키웠냐고 울부짖더라고요. 30대 때는 친정 엄마에게 받은 차가운 시선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억울하기도 하고, 외로웠고, 소외됐던 저를 품어주기 시작했어요. 대인관계에서 편한 관계가 일도 없을 정도로 늘 긴장 상태였던 제가 엄마들과 친구가 되면서 지지를 많이 받았어요. 이쯤이면 됐겠지 할 때쯤 남편과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아지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흔들렸고, 이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어요. 그때 만난 5학년 선생님과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한 사람으로서 당연했던 나의 힘을 되찾기 위한 사투였어요. 앞으로도 어떤 마음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까요..
오래된 얼룩을 완벽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달라요. 그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보아주고, 품어주면 새 희망이 자라요. 앞으로 인생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랄까요.
미해결 과제들이 꼭 아픈 것만은 아니에요. 상담하는 중에 '아, 이 장면이 생각났어요.'라며 살짝 미소가 지어질 때가 있어요. 저 기억 뒤편으로 밀려났던 따듯한 순간들이요. 중학교 때 외톨이로 보내고, 뭐든 인정받고 싶어서 공부라도 열심히 했지만 정말 해도 해도 보아주지 않는 시간들 속에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준 장면들이 있음을요.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이었어요. 국어 선생님은 쇼트커트 머리의 90년대 중반에 주먹만 한 금색 링 귀걸이를 하는 여자 선생님이셨어요. 말씀마다 박력이 넘치고, 유머가 따라다니는 분이었죠. 어느 달의 9일, 끝자리 9번 대 번호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시키셨어요. 29번인 저도 일어나서 책을 읽었죠. 손 들고 발표 한 번 안 하는 저였지만, 읽는 건 좋아해서 책은 편하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만" 하셔서 멈추고, 자리에 앉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너 목소리 되게 좋다. 나중에 아나운서 해도 되겠는데~"
'네, 제가요? 목소리가 좋다고요? 아나운서 해도 되겠다고요? 제가요? 정말요?...'
이 선생님은 속에 없는 말, 입바른 말 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지 심장이 막 뛰기 시작했어요. 제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기에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죠.
'어쩌면,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을지 몰라...'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저를 살렸어요. 중 3부터 놓아버린 공부를 뒤로 하고, 고등학교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방송부 지원이었어요. 습기도 없는 사람이 무슨 배짱이었는지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해야 들어간다는 방송부 시험을 보고, 보기 좋게 떨어졌죠. 다른 동아리도 도전할 용기를 얻어서 시 동아리, 교지 편집부에 합격했답니다. 저의 성벽 안에만 살던 아이가 성문을 열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 자체로 변화였어요. 그렇다고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에요.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방송부 시험을 볼까 했는데 한참 우울과 혼란, 방황이 짙었던 때라 엄두도 못 냈어요. 낮 12시면 교정에 흘러나오는 방송에 가끔 귀를 들이대며 넘사벽이라며 도전 안 하길 잘했다 했어요.
약발이 떨어지듯 그렇게 기억 너머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몇 년 전, 드림보드라고 앞으로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이미지로 찾는 작업을 했어요. 집단상담은 아니었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스파크처럼 스쳐가는 거예요.
'맞다, 국어 선생님, 목소리, 아나운서..'
그러면서 라디오 DJ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심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해도 선생님이 그때 저에게 좋다고 했으니까 제 목소리가 좋은 게 사실인 것처럼 확신했나 봐요. 몇 년 동안 드림보드로만 품었던 꿈을 드디어 팟캐스트로 이뤄냈어요. 천명, 만 명 구독자는 아직 꿈도 못 꾸는 팟캐스트지만,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속으로 박수 치며 가끔 달아주시는 댓글들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어요.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고등학교 때, 또 지금의 제가 어떻게 있었을까요?
마음속 미해결 과제에는 아픔도 있고, 희망도 있어요. 내게 있었던 좋은 말, 행복한 순간들보다 실수, 실패, 아픔이 3~4배 강력하게 기억되다 보니까 묻히기 쉬워요. 아픔들을 치유하며 안개 걷히듯이 사라지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면들이 보여요. 그 힘들은 저장 해야죠. 나를 살리는 마음의 고함량 영양제들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