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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를 돌보고 있나요?

Mind Zero 프로젝트 4주 차

by 마음상담사 Uni

마음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죠. 어쩌면 마음보다도 더 중요한 몸 알아차림도 필요해요. 여러분은 몸 알아차림 하고 계신가요? 저희 딸들은 체육 시간만 기다려요. 반별 이어달리기 대항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설레어 아침도 못 먹고 가고, 시간표 중에서도 체육 시간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예요. 저는 그 맘을 알겠는데 공감은 잘 안 돼요. 체육시간이 공부를 안 하니 좋긴 한데 운동한다는 자체는 최악이었어요. 몸치인 데다가 겁이 많아서 공만 보면 피해 다니고, 늘 5등급만 받았던 과목이에요. 지금도 따로 운동을 챙겨하지 않는 편인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 비슷한 것이 자전가 타기예요. 늦게 배운 자전거 타기에 흠뻑 빠져서 차로 10분 거리인 상담실도 자전거로 30분씩 타고 다녔어요. 운동 겸, 산책시간도 되고, 아이디어도 떠오르다가, 복잡한 일상에 주는 작은 일탈처럼 소소한 행복감도 느낀답니다.

여느 날처럼 상담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하천을 끼고 있는 산책로 위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가다가 문득 몸을 챙겨주지 못했었던 과거의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나를 어쩜 이렇게 돌봐주지 못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조금만 아픈 것 같아도 문자 보내주고, 물어봐 주고, 마음 써 주면서 365일 24시간 몇십 년을 붙어 온 나에게는 그리도 냉정했을까. 내 몸 피곤할지는 생각도 않고 무리하게 일정 다 잡고, 그 일들 다 해내느라 스트레스 온몸으로 받아내며 못 해내면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저를 또 탓했어요. 전날까지 힘들게 일했는데도 다음 날 누가 만나자고 하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가겠다고 하고, 아이 생각해서 책 읽어주겠다고 밤잠도 설쳐가며 건강은 생각하지도 않았더라고요. 12살부터는 화장실도 거의 가지 않았고, 고 3 때부터 먹던 갑상선 저하증 약도 20대에는 잘 챙겨서 먹지 않았어요. 호르몬 문제라서 평생 먹어야만 하는 약인 대도요. 어쩌면 갑상선 호르몬이 불안정하다 보니, 우울이 심해지고 악순환 사이클이 심해졌을 것 같아요. 그나마 그 약도 임신하면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안 된다고 하니 아이를 생각해서 열심히 먹었어요. 저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죠.


마음으로만 저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대해서도 챙겨주지 않았어요. 외모를 가꾸고, 화장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이 주였죠.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 몸에 상처가 생기고 망가지고 아프게 돼도 화를 내거나 보호해 주지 못했어요. 찰나의 퍼즐들이 맞춰지다가 그 끝에 이 말이 나왔어요.


"미안해, 현순아.. 용서해 줘.."


노을이 지고 있는 핑크빛 하늘과 살랑 부는 바람에 꽃과 풀들이 파르르 떨고, 하천의 물이 지는 빛에 반사되어 살짝 빛나는 장면을 마주하며 눈물이 흘렀어요.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눈물이 흘러도 사람들은 잘 몰라서 울기도 편했어요.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어쩜 그리 몰랐을까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어요. 그 와중에도 몇 번이고 되뇌어했던 말이 용서였어요. 나에게 나를 용서해 달라는 그 말 밖에는요.. 다행히, 그 진심을 받아준 것 같아요. 그 어렵다는 용서를요...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돌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아이들 돌보며 살았던 것처럼 나도 돌보기로요. 우선, 일어나서 따듯한 물 2잔과 약을 먹는 건 꼭 챙기고 있어요. 약 먹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생각하고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요. 나를 위해서 약을 잘 챙겨 먹고, 따듯한 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고, 좋은 경치를 보고, 여행을 하고, 물건을 사는 것까지도요.


힐링이 워낙 예전부터 대세였어서 남들 다 가는 여행지에 꼭 가고, 맛집은 하룻밤을 줄 서서라도 먹고, 멋진 인테리어 사서 집을 꾸미고 돌보는 정도는 많은 분들이 하고 계세요. 이런 일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닌지, 진정 그 경험에서 나를 위해 선택하고 충전하고 있는지 잠시 멈추고, 알아차려 보세요. 그 순간에 내가 아닌 남의 시선 때문이었다면 바로 선택할 수 있죠. 로션을 바르고 문지르며 피부에 스며들 듯,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 행복이 퍼지도록요. 사진에 남은 멋진 모습과 SNS의 좋아요와 댓글보다도 더 중요한 건 진짜 나를 위해 돌봐주는 기억들이에요.

나를 돌봐주는 것이 거창할 필요 없어요. 버킷리스트처럼 돌봄 리스트를 만들어서 몇 가지를 정해 두는 거죠. 직장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오늘도 수고했어, 진짜 애썼다, 가서 푹 쉬자."라고 나에게 말해주기, 약속을 잡기 전에 내 컨디션 꼭 확인하기, 기분 우울할 때 시원하게 울고 털 수 있는 영상 골라두기, 나만 아는 힐링 스폿, 아지트 같은 공간 정해두고 조용히 쉬고 싶을 때 들르기, 화가 날 때 내 마음 진정시켜 줄 수 있는 음악 리스트 폴더 만들어 놓기 등도 있겠죠. 예전에 청소년 집단 상담할 때, 학생들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아티스트 덕질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대요. 이럴 때도 자기 마음을 돌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생각하면 충전되지 않을까요?


저의 돌봄 리스트 중 한 가지는 엄마 기념일 챙기기예요. 첫째의 생일은 11월인데요. 그날은 저의 엄마 된 기념일이기도 해요. 제 인생을 바꿔 놓은 혁명 같은 날이니까 기념해야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제가 애정 하는 숲 속 레스토랑에 혼자 가서 맛있는 음식 시켜놓고 음미하며 먹어요. 원래 토마토 스파게티 별로 안 먹는데 이상하게도 이 날은 꼭 이 음식이 당겨요. 그러면서 엄마로 열심히 잘 살았다고 토닥여 줘요. 사춘기 아이들 비위 맞춰가며, 역정도 내 가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리 쥐어짜가며, 또 바쁘게 일하고 음식 챙기며 돌보느라 애썼잖아요. 그런 나를 챙겨주는 날, 일 년에 한 번은 대대적으로 해 줘야죠.

반야 바라심경에 보면 이 세상도 내가 있어야 다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 나를 꼭 돌봐주세요. 여러분만의 기발하고 멋진 돌봄 리스트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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