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Jan 21. 2022

36살까지만 살고 죽을 거라고요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30

 몇 년 전부터 청소년 쉼터에 자살 우울예방 교육을 하게 됐습니다. 10대 중반에서 20대 초의 학생들이 단순 가출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집에서 지낼 수 없거나,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던 이유로 모인 곳이에요. 쉼터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어찌 보면 학생들이 정말 몸과 마음의 쉼이 필요할 만큼 지쳐있다는 상태이기도 해요.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숙식까지 하다 보니 속마음을 터놓고 친해지기도 하지만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이곳에서까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살 우울 예방 교육을 하면 학생들 호응이 낮은 편이에요. 예방 교육이 뻔하다는 생각과 시간 때우기 식의 의무이기도 하고, 예방을 넘어서 이미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다들 관심도 없고, 영혼 없이 앉아 있는 가운데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학생이 있었어요.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에게 시비조로 말을 걸어왔어요.


 "저는 상담 안 믿어요. 받아봤자 도움도 안 되는데 뭐하러 받아요. 저는 36살까지 살고 죽을 거니까 이런 교육 필요 없어요.!!!"

 말 한마디만 해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학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죠. 저도 마음이 위축되고, 속상하고 당황도 되고, 화도 올라올 뻔했지만 학생의 마음을 먼저 바라봤어요.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다쳤으면 상담도 필요 없고,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학생이 하는 말들이 저를 자극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런 마음인데도 여기 와 있는 것이 고맙더라고요. 36살이라고 유예기간을 두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어요. 학교에서, 집에서도 또 범죄피해까지 당하면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거든요. 아주 작은 희망으로 버티고 있는 거죠. 그 희망의 불씨에 어떻게든 장작개비를 구해다 올려주고, 바람을 불어넣어서 다시 불이 붙기만을 바라게 됐어요. 교육 시간에도 어떻게든 노력하고 빛나는 모습을 미덕으로 인정해 줬어요.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잘했다, 고맙다고 알려주고, 또 정이 많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엄청 챙겨줄 때 배려와 사랑이 많다고 칭찬해 주었어요. 그랬더니 조금씩 마음의 결이 달라졌어요.


 어느 날은 저를 보자마자 상담을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그 선생님은 전에 받았던 상담과는 다르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누군가를 믿기 시작했다는 신호 같아서 제가 다 마음이 놓였어요. 점점 자기 편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두루두루 챙기려 하고, 갑자기 화를 내나 짜증을 내는 일도 거의 없어졌어요. 교육을 마무리할 때쯤, 미래에 꿈꾸는 모습을 이미지로 찾아서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돈 많이 벌어서 건물을 살 거래요. 떵떵거리면서 자신감 있게 사는 모습으로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요. 다시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증오하고, 미워하면서 자신까지 망치는 것이 아니라 더 보란 듯이 살아내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것에 열심히 박수를 쳐 줬습니다.

 저와 만나는 마지막 날에 만다라 도안을 골라 색칠하는 작업을 할 때는 보자마자 바로 골라냈어요. 완성한 후에 설명을 해 주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도안 속 무늬가 세월호 상징하는 리본 같았다면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색칠을 했대요. 자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자기보다 더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주는 마음에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이 순간에 확신이 들었어요. 누군가에게 관심과 지지를 받은 사람은 또 자신보다 힘든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에 큰 사랑을 싹 틔운다는 것을요.


 이 학생만의 일일까요. 각자의 상황과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사람은 어느 누구나 자신이 어떤 모습과 행동에도 속마음을 읽어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바 주면 방향이 변하게 됩니다. 상담사로서 상담실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임에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변화에 그저 감탄할 뿐이에요. 공식처럼 딱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중심으로 만나다 보면 어느새 달라지는 마법처럼요.


 이 학생과 만나야 될 인연이었는지 우연히 주고받은 연락처 덕분에 시간이 지나 톡으로 연락을 하게 됐어요. 생일 알람 톡이 떠서 작은 선물과 함께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받아주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줬어요. 다행히 부모님과도 화해를 하게 되고, 다니고 싶지 않아 하던 학교도 졸업했대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 톡을 보내줬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열심히 살고 있어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에 심쿵했어요.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 힘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고요. 그 이후 SNS 팔로워가 되었는데요. 지금도 가끔 소식 보면 미래 모습을 꿈꿨던 대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어요. 돈 많이 벌거래요. 마음먹은 대로 해 나갈 멋진 사람이죠!!!

     

 6개월 동안 한 달에 두어 번씩 만나온 이 학생도 변할 수 있잖아요. 어떤 신문기사에, 교수님이 고등학생 이후부터는 변하기 힘들다고 인터뷰 한 글을 읽었어요. 과연 그럴까요? 사춘기를 겪고, 방황하는 청소년기는 인생의 리허설 같아요. 강의나 공연을 하기 전에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그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선 리허설이 필수잖아요. 성인으로 제 몫을 하고 살아가기 전에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들에게 '얘는 틀렸어, 이렇게 생겨먹어서 뭘 할 수 있겠어, 벌써 자세가 안 돼'라는 말들로 선을 그어 버리고 낙인찍는 것만이 방법일까요? 다른 길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리허설에서 실수하고, 어설프고, 헤매면 몇 번만 더 연습하고 적응하면 잘 해낼 수 있다고 격려하며 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존재로 존중받을 때 이미 갖고 있는 내면의 힘들 중에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용기를 내고, 노력하고, 이상을 품고 나아갈 수 있어요.


 우리, 사춘기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선택해 보아요. 먼저, 아이들을 제대로 보아요. 어떻게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되는지, 뇌의 발달로 어떤 점이 힘든지, 기질에 따라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도요. 그리고, 사춘기조차 제대로 못 겪어서 아픈 부모님들의 마음도 돌봐주세요. 내면에 쌓여 있던 불안과 두려움 에너지를 치유하며 사랑에너지로 충전해 보세요.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면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기회, 꼭 잡아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단 하나뿐인 초등학교 졸업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