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Jan 24. 2022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면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31

  6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오늘은 온라인 수업이 아니라 등교하는 날인데,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하는 날은 유난히 힘들어해요. 예전 같으면 월화수목금 5일을 꼬박 등교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네요. 반으로 줄어든 등굣날을 기다리며 얼른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면 좋으련만, 오히려 가지 않는 날이 마음이 편하니까 더 두드러지게 거부 반응이 나올 때가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무섭고, 실수했을 때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고, 수치심을 주는 분이라 아이가 특히 더 가기 싫어했어요. 아이가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고, 난독증이 있어서 글씨는 읽고 쓰지만 선생님의 지시 등이 빠르면 이해가 잘 안 되거나 놓치는 때가 있거든요.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른 것이 당연한데 못 따라오는 학생들에겐 지적과 혼남으로 고치려 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그 상황에 있는 아이는 오죽할까요. 저라도 싫을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많이 겪어봐서 알죠.   

 그럼에도,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발동을 걸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아이 마음에 공감하고, 다독여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면 좋은데, 바쁜 아침 시간이 재촉하니 저에게도 여유가 없습니다. 참고 참다가 그래도 아이가 안 가겠다고 버티면 이 말이 제일 먼저 튀어나와요.


"그럼 어쩔 건데? 초등학교는 가야 되는 곳인데 어쩔 수 없잖아.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어. 그래도 참고 다니고 견디는 거야. 그것도 못하면 어떡할래? 왜 너만 유난이야!!!"


 입에 모터 달린 듯이 줄줄줄 나오는 엄마의 레퍼토리를 이젠 아이도 외웠겠어요. 이 말로 아이가 존중받고 싶어 했던 욕구를 KO승 해 버리고, 학교를 가게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저에게도 방법이 없는 듯 느껴졌어요. 장맛비가 거세게 퍼붓던 날, 아이는 울며 학교 정문을 통과했고, 저도 뒤돌아 울음을 삼켰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럼 어떡해. 이겨내야지. 방법이 없는데..'


 상담실에서 만난 부모님들도 이 말씀을 자주 하세요. 자기가 원해도 어쩔 수 없지 않냐고요. 아이들은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 의욕이 없거나 겁에 질려 불안한 상태로 와요. 그나마 상담실에 와 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죠.


 얼마 전에 기사를 읽었어요. 21살의 해군 일병이 군대 내 집단 따돌림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휴가 중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그 일병의 어머니 인터뷰 기사였어요. 아들이 생전에 군대 내 가혹행위를 신고도 하고, 부모님께도 알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대요. 그런데, 상부에서는 알겠다고 말만 하고, 보호받지 못한 상태에서 가해 상황은 더 심해졌어요. 자신은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인데 군대 사람들이 일처리를 못한다고, 멍청한 것 같다고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있을 때 조차도 부모님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으셨대요. 오히려 군대에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상명하복 군대라 어쩔 수 없다'라고 하셨대요.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 자신을 자책하고 아들에게도 죄책감이 크다고 말씀하셨어요. (출처: 한겨레신문, 2021년 9월 9일, '극단 선택 해군 일병 어머니 인터뷰', 이승욱 기자)


 어머님의 말씀에 가슴이 아프고, 먹먹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남의 일이 아닌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일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학교를 다닐 때뿐만이 아니라 학교, 군대, 직장, 인생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우리가 살아왔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들 취직 전쟁이고, 취직 성공하면 치사하고 힘들어도 버텨내라 하고, 결혼해서 얼른 가정을 꾸리라 하고, 결혼생활이 힘들어도 다들 아이 보며 참고 산다 하고, 또 그 아이들에게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여기에 맞춰 살라고 해 왔더라고요. 저의 선택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택지에는 진짜 제가 원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물어봤나 싶었어요. 그 누구도 물어봐주지 않았으니 저에게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당연히 우리 아이들에게도 묻지를 못했어요.

 이젠 이대로 쳇바퀴 속에 빠져 있을 순 없죠. 어쩔 수 없다는 말의 세뇌 시스템이 돌아갈 때, 거기에 맞설 문장이 필요했어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방법을 찾을까?"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찾아가 보는 거예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스스로를 신뢰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깨닫게 된다'고 말했어요. 저희 아이처럼 자녀가 학교나 친구관계 등으로 힘들어한다면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먼저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아이 요즘 노력하고, 발휘하고 있는 모습들 인정해 주세요. 마음이 통한다 싶을 때, 무엇이 힘들었는지 물어보고, 부모의 시선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들어주세요. 마음에 쌓였던 먹구름들이 조금일지라도 사라지고 가벼워질 거예요. 그리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욕구와 느꼈던 감정들을 존중받으면,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이 때, 부모님의 생각도 전하면서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죠. 도저히 뾰족한 방법이 생각 안 나고, 견뎌내야 하는 상황들이어도 내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갖고 인내할 수도 있어요. 미덕을 연마하는 성장의 시간으로 선택할 수도 있어요. 마음먹기라고 하잖아요.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바로 지옥이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헬조선이 아니라 희망 대한민국으로 만들어봐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어떻게'로 방법을 찾아봐요. 서로의 마음속 욕구와 감정을 존중하며 길을 찾다 보면 가정이 바뀌고, 학교, 사회, 나라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군대처럼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곳도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잖아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초등학교 달리기 행사가 뉴스에 나왔어요. 5명이 달리기 시합을 했고, 1, 2등을 다투던 한 명이 넘어졌어요. 그때, 라이벌이었던 학생이 달리기를 멈추고 넘어진 친구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러자 뒤에 오던 세명의 친구도 멈추어 옆에 함께 발을 맞춰 줬어요. 마지막 피니쉬 라인에선 오히려 넘어진 학생을 일등으로 들어가게 친구들이 등을 밀어주었고요. 이 장면에 감동받은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박수를 치며 5명 모두에게 1등 도장을 찍어 줬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어도, 한 사람의 선택이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우리를 바꿔 갈 수 있어요. 저도 아직 딸과 방법을 찾고 있어요.  

 "딸아, 우리 어떻게든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보자"    


https://youtu.be/ABu1y0vGlAk(초등학교 아이들의 아름다운 달리기 영상)

매거진의 이전글 36살까지만 살고 죽을 거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