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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an 25. 2022

INFP 엄마랑 ENFP 딸이 여행을 가면

 저는 찐 INFP, 인프피 유형이에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여러 번의 MBTI 검사를 해 봐도 20년 넘게 한 번도 다른 유형이 나온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4학년 딸은 이제 막 MBTI 검사를 해서, ENFP, 엔프피 유형임을 알았어요. 초등학생 중에 ENFP 유형이 가장 많이 나와요. 신체가 자라는 것처럼 성격도 발달하는 중이라 점점 크면서 자신의 본 유형으로 바뀌어 가기도 하죠. 스파크처럼 통통 튀는 발상과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뚜렷한 개성이 돋보이는 ENFP 딸, 잔다르크처럼 평상시 조용하고, 상대의 말에 깊이 공감해 주면서도 속으로 자기만의 세상이 강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저돌적으로 변하는 INFP 엄마.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엄마와 딸이 나름 따로, 또 같이 보낸 제주의 2박 3일 여행 이야기예요.

 이들의 여행에는 목표하는 바가 있어야 해요. 사실, 저의 생일이었거든요. 이번 생일은 혼자 제주여행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딸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물어봤죠. 중 2 첫째는 단칼에 거절했고, 둘째도 처음엔 싫대요. 속으로 다행이다 하면서도, 둘째에게는 내심 몇 번 더 물어봤죠. 겨울방학에도 어디 못 가고 있었던 터였거든요. 보통 엔프피 딸은 친구가 1순위예요. 이번에도 이 이유로 끝까지 고수하다 마지막에 수락했거든요. 엄마와 단 둘이 가야 한다는 것이 그다지인 거죠. 어떻게든 친구 한 명을 섭외하려 했으나 제주까지 말도 안 되는 일임을 알고는 대신 꿈을 목표로 했어요. 갑자기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더니 '엄마의 친구 되기(원래 넘넘 엄마 혼자 가도 되는데 말이죠ㅠㅠ)', '말 타며 초원을 달리기'를 하겠대요. 두 개의 꿈을 이루겠다고 하니 인프피 엄마는 그래도 같이 가겠다는 고마운 딸을 위해 목표로 똘똘 뭉쳤어요.


하지만 인프피 엄마, 알죠~겉은 차분한 얼굴, 속은 안드로메다. 여행의 큰 그림만 그리고, 숙소와 비행기만 예약하고, 딸의 목표인 승마 쪽은 되겠지 했던 거죠. 마음속으로 생각은 했었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오래 걸리는 편이라 망설이다 결국 당일까지 온 거예요. 이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중요한 거면 빨리 해야지, 왜 못하냐고요. 그렇죠. 저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으니 이렇게도 살더라고요. 사람들마다 참 이해 안 되는 부분들 한 두 가지는 있잖아요.

 

 리무진 버스를 타기 전에 부랴부랴 검색을 하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승마체험이 아니라 두 시간 정도 초원을 달리는 외승인지라 예약이 쉽지 않았어요. 전화하는 족족 줄줄이 마감 사태였고, 머릿속은 지진이 났죠. 어쩌나, 이것 때문에 제주 간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못 타게 되면 딸에게 너무 미안하고, 예약 안 챙긴 저를 자책하며 마음이 복잡했어요. 옛날 같으면 저를 엄청 비난하고, 코너로 몰아갔는데요. 지금은 비난보다는 잘못과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금 사태에서 헤쳐나가야 할 것에 집중합니다. 리무진 버스 타는 동안 저를 다독이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 되뇌었죠. 결국은 영업시간 개시되길 기다렸던 마지막 한 곳에서 극적으로 예약을 했어요. 게다가 딱 한 자리 남았던 터라 50% 할인까지도 들어갔네요. 야호!!! 딸과 하이파이브하고 손 잡고 기쁨과 안도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행 동안 조용하지만 허술한 인프피 엄마 덕에 딸의 생활력 지수가 상승했어요. 이틀 연속 오후 4~5시 타임의 중요 순간마다 저의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서 멘붕 되고, 방법을 생각해내느라 딸이 이리저리 뛰더라고요. 매번 여행마다 엄마 취향의 숙소를 마음에 안 들어해서 불신감이 높았는데요. 저는 저렴하고, 감성적인 곳 좋아하거든요. 할머니 민박 같은 곳요. 어렸을 때 화장실이 밖에 있는 숙소를 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컸나 봐요. 마당 열고 들어갔을 때, 밖에 있는 화장실을 보고는 "이것 봐, 이번에도 화장실 밖에 있잖아."라며 울상 짓는 딸의 이야기에 한참 웃었답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저의 생일 기념으로 갔던 터라 나름의 사치를 잔뜩 부렸거든요. 딸이 곧 집안을 둘러보더니 너무 멋지다고, 웬일이냐며 환호의 박수를 쳤어요. 물론 둘째 날은 역시나 불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요.

 딸과 소소하게는 다녔어도 2박의 여행은 처음이었어요. 엔프피 딸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들 보며, '우리 딸이 많이 컸구나' 새삼 느끼고, 모녀라기 보단 어느새 친구처럼 자리매김함에 감사했어요. 엔프피 딸의 엄마 선물은 휴대폰 보조배터리로 정했답니다, 센스 짱이죠. "고마워, 딸~~~^^"

 첫째 날, 좌충우돌 예약 기부 터 아늑한 곳에서 맞은 딸과의 시간까지, 내내 꺼내 볼 찐한 추억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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