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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May 22. 2020

8살, 한글 때문에?!

"엄마, 미안해""아냐, 엄마가 더 미안해"


 저희 둘째 기쁨이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3년 전, 가을에 올린 그날의 기록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 다들, 한글을 떼고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기정 사실화되어 있는 분위기지만, 기쁨이는 한글을 못 떼었어요. 1학기에는 모음, 자음 구분도 안 되었고, 2학기부터 조금씩 입력이 되어 1학년 말까지도 복잡한 모음을 배우는 중이었어요. 받침 있으면 낱글로는 조합을 하지만 아직 읽을 때는 부담스러워하고요. 저도 열성 엄마가 아니라 가르침에 있어 부족하답니다. 저 스스로 자책도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학교생활을 어찌하는지 저는 상상도 못 했어요. 남들은 다 알고 쓰는데 혼자만 모를 때의 두려움. 힘들어서 내일 학교 안 간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죠.


'한글 때문에 너무 힘든가... 어떻게 해야 하지... '


 그나마 담임선생님도 천천히 기다려 주시고, 친구들도 글자 모를 때는 도와줘서 아이가 생활을 해 나갔어요.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친구에게 모르는 글자 때문에 물었다가 친구가 자리를 이동하게 되니 선생님께 혼이 났대요.  딸의 교실 칠판에는 5단계의 자리가 있습니다. 잘하고, 못하냐에 따라 아이들의 이름이 왔다 갔다 하는 5단계입니다. 기쁨이가 부탁한 친구의 단계가 내려갔답니다.  그 친구는 속상해서 기쁨이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밤에도 집에 와서 내내 울었대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기쁨이도 속상했던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힘든가 봐요. 그래도, 학교 가서 잘 생활하는 기쁨이가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한글은 어려워하는 반면에 수학은 재밌어해요. 학습지나 선행 없이 지금 하고 있는 진도를 맞춰갑니다. 손으로도 막 더하고, 머릿속으로 자기만의 방식이 있나 봐요.


 그냥저냥 흘러가다가 저와 아이도 부딪치는 날이 있어요. 오늘은 한글을 좀 더 진도 늘려야겠다 맘먹은 날이죠. 될 것 같은 이상한 움직임에 아이와 의욕을 높이다가 막히고, 아이가 이해를 못하면 그 높은 의욕이 불덩이가 됩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며칠 전에도 그랬어요.


"네가 좋아하는 프리파라 카드 글자도 모르면서 무슨 놀이야. 한글도 네가 하겠다고 맘먹고 하면 되잖아. 왜 못해서 다 힘들게 해"


 아이 마음에 이 못난 엄마가 또 대못을 박았죠. 이 글을 쓰면서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그 휘몰아치는 순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요즘은 그래도 단련이 되어서 화내고 나서 5분도 안 되어 마음을 바라보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처 받은 아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 입을 어찌해야 할까요... 어쨌든 빨리 수습해야죠.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사과를 합니다.


"엄마가 아까 그렇게 얘기해서 너무 창피했었어."


"그렇지, 미안해. 네가 창피할 일이 아닌데 엄마가 미안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음 날 저녁이었어요. 아이가 저에게 어제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엄마, 미안해. 내가 한글을 못해서."


"아냐, 엄마가 더 미안해, 그건 네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야."


"아냐, 그래도 내가 미안해."


"아냐, 엄마가 더 미안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아이도 고맙고, 어찌할 줄 모르는 제가 밉기도 하고, 왜 이런 상황이 계속 펼쳐 쳐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공부는 자기만의 속도가 다 있습니다. 사회에서, 그것도 교육의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우리 아이가 못 하는 부분이 있다고 미안하고, 속상하고, 혼이 나야 하는 이유가 안 됩니다. 각자만의 속도가 있습니다. 못하면 기다려주고, 그 속도에 맞춰 개입해 주고, 잘하는 것은 인정해 주고, 그것이 진정한 교육일 겁니다.


 저의 상식에서는 그렇습니다. 저 또한 저의 상식을 잘 따라가겠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잘 잡아가겠습니다.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봐주세요. 경쟁과 잣대, 비교, 평가에서 자란 우리의 삶이 어떤지를 살펴보면서요... 8살이라고 모두 쉽게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문화가 되길 바랍니다.




 제가 한글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했을 때 여러 분들께서 답글 주셨어요. 저와 비슷한 상황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의 글이었습니다. 그 댓글들이 제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기쁨이의 속도를 맞춰서 잘 해 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겨울방학에도 큰 진도가 없었어요. 분명 조금씩 윗단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한글이 늦다고 하는 아이들과는 속도차이가 컸죠. 기쁨이는 2학년 초, 문득 지인이 단톡방에 올린 난독증에 관한 글을 읽고, 혹시나 했지만 아닐거야 했어요. 며칠 뒤, 담임 선생님 면담을 하면서 저보고 어떻게 하실 거냐며 언성을 높이시는데, 마치 혼나는 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 때 제가 난독증 검사를 받아보려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선생님께서도 얼른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먼저 꺼내시기가 난감하셨었나 봐요. 2학년 4월, 난독증 검사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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