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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Aug 04. 2020

그 무섭다는 사춘기, 엄마도 기댈 곳이 필요해

4. 그 무섭다는 사춘기, 엄마도 기댈 곳이 필요해   


 딸아, 4학년 때쯤부터 달라졌던 거 기억나니? 흔히 ‘사춘기’, ‘중2병’이라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더라. 엄마는 ‘중2병’이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아. 사춘기는 그야말로 인생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야. 키가 자라고, 목소리가 변하고, 뇌가 커지듯이 마음도 자라느라 좌충우돌하는 거지, ‘병’으로 치부하고, 바라본다는 건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 같아. 병이라는 것은 아프고 어려움이 있는 거니까 도와야 하는 것이지, 병이 있다고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맞지 않지. 그렇다는 엄마의 생각이었고. 다시 너의 사춘기로 돌아가자.     


 활발, 발랄, 늘 기분 좋던 네가 짜증이 많아지고, 대답도 시큰둥하고, 엄마의 잔소리들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예전보다 버틴다는 느낌이 들었어. 잔소리하는 엄마가 잘못된 거지만, 엄마도 엄마로 살다 보니 너에게 지적질을 참 많이도 했다. 엄마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은데 너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안 되는 것들을 아프게 혼내고 소리쳤어. 그 점은 엄마가 진짜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엄마가 요즘은 많이 줄었지? 엄마가 정신 수양을 하면서 허벅지 열심히 꼬집고도 있지만, 너의 공도 크단다.     


 아까 네가 버틴다고 이야기했잖아? 엄마가 혼을 내면 어릴 때는 네가 울고, 행동을 바꾸려 했는데 뭔가 달라지면서는 엄마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입술은 꾹 다물고 있는 거야. 억울한 마음에 눈물은 계속 차 오르는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지. 낯설지만 너의 힘이 느껴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어. 그렇게 몇 번을 거치더니 결국에는 네가 한 마디 하더라. 식탁에서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 엄마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난리야. 나도 아는데 잘 안 된다고”     


 너의 말에 엄마도 한 마디 못했지. 말문이 막히더라. 맞는 말이라 엄마도 반격을 못했겠지. 네가 항상 입에서 맴돌던 말이 그 말이었구나. 그 한마디를 엄마에게 여태 못하고, 속으로 참고 살아왔구나. 엄마에게는 충격이지만 너의 인생에서는 축하할 일이다. 엄마라는 벽을 이제 넘었으니.      


 그 후로는 말해 아프지. 정말 엄마의 벽을 넘어서 훨훨 날더라. 등교 준비시간마다 전쟁이 따로 없었어. 아침 먹다가 싸우고, 옷이 어디 갔냐, 양말이 어디 갔냐에서부터 싸우고, 아침에 너와 웃으며 현관문에서 인사하고 보내는 게 엄마의 소원이 될 정도였어.     


 너의 사춘기가 시작될 때, 엄마는 갱년기는 아직 아니지만 책이 나오고, 강의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단다. 엄마도 사회 초년생의 마음으로 이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하면서 긴장되고, 에너지를 쏟던 때였지. 그만큼 너에게 소홀하고 정신이 없으니까 짜증 내는 횟수도 늘어나더라. 그런데 너도 엄마에게 날 선 말들을 하기 시작하니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더니 엄마도 너랑 같이 싸우고 있는 거야. 엄마도 웃기지. 11살 딸과 똑같이 서서 싸우고 있으니 어른 맞나 싶은데 엄마도 그 과정을 넘어야 하는 거였더라고.     


 한 번은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중이었어. 너도 평소처럼 7시에 일어났는데 조금만 더 잔다며 누웠어. 자기가 혼자 일어난다고 절대 참견도 못하게 하니 알았다며 조심히 나왔지. 엄마도 밥 하고, 나갈 준비 하다 보니 30분이 지났네. 너도 나오지 않길래 방문을 살짝 무심한 듯 열어뒀지. 너에게 짜증 난다는 반응을 엄마도 받기 싫었거든. 그랬더니 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라. 엄마도 조용히 나왔는데 등 뒤에서 그분이 또 오신 거야.

 10분만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냐며 분노 폭발과 눈물샘이 터져서 무서운 전조를 알렸지. 발을 동동 구르고, 엄마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목이 터져라 외치더라. 몇 번의 경험 후, 너랑 부딪쳐서 싸우느니 이 순간이 지나가도록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어. 그러다 아차 한 거지. 지금 상황에서 안 들릴 거 알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상황에 맞춰 준비할 수 있게 요령을 알려줬더니 너의 분노 레벨이 상승했지. 본격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며 우당탕 소리가 들리는데 엄마도 빨리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이어폰을 집어 들었어. 미리 만들어 놓은 플레이 리스트 음악을 틀고, ‘30분만 잘 버텨서 등교시키자’ 내내 다짐했지. 너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흔들리니까 베란다로 가서 귀도 막고 숫자도 세고, 욕도 해 보며 마음속 악한 에너지들이 빠져나가길 노력했단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이적의 ‘나침반’과 이하이의 ‘한숨’이었어.      


 ‘아직 내게 너라는 선물이 있으니까 아직 이 황량한 세상 속에 너는 내 곁에 있어주니까... 마치 꼭 나침반처럼 내 갈길 일러주고 있으니...’,

‘숨을 크게 쉬워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노래를 돌려가며 몇 번 들으니 안정이 되더라. 눈물도 나고, 이 상황도 아프고, 삶이 왜 이런가 싶기도 한데 음악이 엄마를 안아주었어. 그 짧은 순간에 너의 얼굴도, 너처럼 반항적이던 엄마의 사춘기 시절도, 그런 엄마를 버텨주었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스쳐가네.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고, 지나가는 거니 내가 더 힘을 내야지 생각했단다. 그 시간이 15분 간이더라.      


 15분의 거센 파도를 보내고 잠잠해진 너에게 갔어. 방 앞에 가서 아침 먹자 말하고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네. 어느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갈 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있는 너에게 가서 엄마가 껴안아 주었어. 너도 엄마를 안아주더라. 또 엄마를 밀쳐내면 어쩌나 했는데 아직 사춘기 시작인 너는 그래도 엄마를 받아주는구나. 마음이 통한 거지? 너도, 엄마도 서로가 어떤 마음이란 거 말 안 해도 아는 것 같았어. 엄마도 너를 버텨내는 걸 이제 배워가고 있어. 이제 엄마가 한발 물러서서 너의 뒤에서 든든히 버텨주어야 할 때임을 깨달았어. 그리고, 얼마 후, 네가 쓴 시야.       


제목: 두 개의 엄마     


어렸을 땐 악마로 보았던 엄마, 소리 지르면 불날 것 같고,

얼굴이 무서워지면 험상궂게 변한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 때

악마는 어디 가고 천사가 나온 것일까?

소리 지르면 나도 소리 지르고 무섭게 변하면 나도 화내고

그러면? 내가 변한 것일까?

내가 더 커지면 엄마는 순한 양이 될까?

(2018년 2월 15일)       


 시를 보고, 네 마음을 보고 깜짝 놀랐어. 고마웠고. 엄마가 천사가 된 거니? 앞으로 너와 더 웃을 날만 많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더 싸우고 다툴지는 모르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말 하면서 앙금 없이, 상처 없이 살아가자. 적어도 엄마와 너는... 우리 딸의 빛나는 용기 덕분에 우리는 분명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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