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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ul 28. 2020

한글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3. 한글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딸아, 엄마가 뭐니 뭐니 해도 너에게 미안한 건 바로 한글 떼기였어. 엄마가 너에게 가장 크게 욕심낸 것이 바로, 한글이란다. 너도 기억하니? 엄마가 한글 못 읽는다고 화 내고, 소리친 거...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고 나니까 잘 몰라서 걱정도 되고, 어린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불안했단다. 그래도, 하루하루 너와 생활하면서 무럭무럭 자라 주는 네가 신기하고 고마웠지. 엄마라는 역할이 익숙해지면서 욕심도 많이 생겼어. 누구보다 너를 잘 키워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더라. 육아서도 챙겨서 많이 읽고, 전문가 분들 쫓아서 강의도 들으러 다녔어. 그러던 중에 네가 6개월 때 책을 많이 읽어주면 좋다는 글을 읽었어. 책을 읽어주고, 자연을 접하고, 배려 깊은 사랑을 주면 된다고 했는데 엄마는 책에만 더 꽂혔나 봐. 그때부터 결심했지.      


‘그래, 책이다. 책을 읽어주자.’     


 다행히 아빠도 책을 사고, 읽어주는 건 반대하지 않아서 집은 점점 벽지가 안 보일 정도로 책장으로 덮여갔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집 배달이 되기도 하고. 네가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밤에 잠을 안 자는 거야. 엄마는 아침잠이 없는 사람인데 반대로 너는 늦은 밤까지 자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엄마가 너를 재우고, 패턴이 바뀌도록 했다면 다시 바뀌었겠지. 엄마는 너의 패턴을 따라가 보기로 했어.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러겠냐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새벽까지 깨어있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되었지. 엄마가 엄청 힘들긴 했는데 1년이나 그렇게 지낸 거 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어. 엄마가 되니 무한 힘이 솟았는지, 무한 열정인지 그때는 그렇게 버텼단다. 새벽까지 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책도 읽고, 집에 들여온 책들은 거의 다 읽어주었지. 엄마의 열정과 인내도 빛났지?     

 힘들어도 행복했어. 네가 책을 좋아하고, 집중하고, 책을 찾아 읽어달라고 들고 오면 대견하고 예쁘더라. 그 작은 손으로 책을 집어 들고, 조그마한 입으로 읽어달라고 하고, 예쁜 눈으로 호기심을 반짝이며 엄마를 바라볼 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장면이야.


 여기까지 여야 했는데.. 책 읽다 보면 한글도 빨리 뗀다는 거야. 빠르면 3살, 4살에도 한글을 뗀다니까 신기했지. 너도 그 나이쯤 책에 있는 글자가 뭐냐고 물어보고, 조금씩 가르쳐 주면 알아 가더라. 그때 엄마가 욕심을 부려서 너를 재촉했지 뭐야. 통문자로 가르친다고 온 집안은 포스트잇과 그림카드로 도배를 했고, 가구들 마다 이름표 딱지가 붙여지고. 너의 시선이 향할 때마다 글씨를 짚어 읽어주고. 그런 엄마의 정성을 하늘도 무심하시지, 한글을 떼겠다고 너보다 앞서가니까 네가 바로 스탑!!!! 하더라. 안 하겠대. 글씨 하지 말래. 엄마가 너에게 부담을 주고, 끌어가려는 신호를 알았나 봐. 그러고는 절대로 하지 않더라.

 사실, 엄마의 욕심이 과했지. 글씨를 빨리 떼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고 싶었던 거야. 우리 딸이 글씨를 읽고, 배움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인정받고 싶었어. 직장에서 업무로 인정받듯이 엄마도 엄마 역할로 잘한다, 대단하다 확인받고 싶어서 너를 앞세웠던 것 같아. 그런 엄마를 제지하고, 너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다니.. 너의 알아차림과 절도가 탁월했지. 그때는 엄마도 내려놓았어.   


 네가 5살 되었을 때, 동생이 태어났잖아. 그때부터 엄마 마음속에 다시 한글 전쟁이 시작됐어. 다른 때보다도 너희를 밤에 재울 때 너의 책을 읽어주면 동생이 방해하고, 다른 거 꺼내오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더라. 그러니, 엄마가 생각한 방법은 네가 빨리 한글을 떼는 거야. 한글을 알면 네가 스스로 읽고, 동생은 읽어주고 딱이다 싶은 거지. 그때부터 한글 전쟁이 시작되었어. 엄마는 목표가 확실하니까 네가 빨리 한글을 읽어야 하는데 너는 읽지를 못하는 거야. 입력이 안 되는 듯 아무리 해도 가, 나, 다도 모르면 정말 폭발해 버렸지. 너는 아직 때가 안 된 건데, 엄마가 무리하게 너를 다그치고, 못 읽는다고 막 소리 지르고 그랬어. 미안해.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정성을 다했는데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 그래서 절망감이 느껴지니까 너를 재촉하고, 화를 내었어. 고작 6살인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딸아. 생각도 안 난다면 다행이지만, 너의 무의식에서라도 아직 상처가 남아있다면 엄마가 정식으로 사과할게.    

  

 참 어리석었음을 깨달은 건, 그렇게 다그치고 화를 내어 한글을 가르쳐도 안 되더니 7살이 되니까 어느 날 네가 혼자 한글을 뗐다는 거야. 유치원에서도 배웠지만 한글을 낱글자로 조합하는 원리 한 번 알려줬더니 금방 너 혼자 한글 원리를 이해했단다. 그때, 엄마는 머리를 망치로 크게 맞은 듯이 느꼈지. ‘난 뭐한 건가’ 싶어서... 너의 속도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으면 네가 한글을 읽는 순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을 텐데. 

 미안하고, 고맙단다. 너의 속도를 존중할 수 있도록 너를 있는 힘껏 보여주고 알려주었잖아. 사람이 누구 마음대로 쉽게 조종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정확하게 알려주었어. 이럴 때가 바로 자녀가 부모의 스승이 되는 것 같아. 인생을 알려주어 고맙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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