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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Aug 15. 2020

사춘기, 너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4장. 사춘기를 맞이하는 모녀의 자세    

 

 4학년의 어느 날, 네가 엄마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버티더라. 눈물은 고이고, 입술은 다물고 있는데 엄마의 잔소리에 눈으로 너를 표현하기 시작했어. 엄마한테 그거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 엄마 말이 맞는 거 아니라고. 나도 말할 수 있는데, 참고 있는 거라고. 너의 눈을 보며 엄마도 움찔하게 되더라. 나는 얼마나 똑바로 살고 있다고, 내가 너에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사춘기, 너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 사춘기, 너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딸아, 부쩍 우리를 떠나 너의 길을 갈 때가 많아졌다. 친구들끼리만 지하철을 타고 놀이공원을 간다고 들떠서 신나는 모습과 반대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건 이제 다 “싫은데”구나. 방에 들어가면서 문은 바로 자동으로 잠금이 ‘탁’ 소리와 함께 눌러지고, 네가 밖에 볼일이 있지 않는 한, 집에서도 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네. 그 볼일이란 화장실 아니면 부엌에 배고파서 먹으러 나올 때 정도.       


 5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밤에 혼자 자기 무섭다고 엄마랑 동생이 함께 자는 방에 구박받더라도 꼭꼭 옆에서 잤던 너인데. 어느새 무서움을 이겨내고, 너 혼자의 길을 용감히 가고 있어. 7살 때 아이를 잃어버리고 6년을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인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를 봤어. 주인공인 엄마가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한단다.     


“아이가 어릴 때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만 나 혼자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마음 때문에 벌을 받나 봐. 나 때문이야.”     


 어디 엄마의 탓이겠니. 엄마도 감정이입이 돼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 엄마 역시 너희를 키울 때 비슷하게 생각할 때가 많았거든. 매일이 같은 날 같고, 언제 끝나는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정말 딱 하루 만이라도 마음 편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 네가 훌쩍 날아가는 새처럼 엄마의 곁을 떠나갈 줄 알았다면 좋았을 걸. 인생의 중요한 것들은 미리 주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 줘도 다 귓등으로 흘려듣다가 어쩜 딱 겪어봐야 아차! 하고 알게 되는지. 막상 겪게 되니 엄마 마음이 서운함, 미안함, 아쉬움이 복잡하더라.

      

 돌이켜 보니, 엄마도 너와 비슷했어. 너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5학년쯤부터 엄마도 집에만 오면 방에만 들어갔단다. 그때는 집에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고, 거실에 있는 TV 한 대가 유일한 오락거리였지. 그럼에도 방에 들어앉아서 책도 읽고, 멍하니 앉아도 있고, 거울도 보고, 엄마의 시간을 보냈어. 즐거울 때도 있지만, ‘나는 왜 이럴까’ 하며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로 우울할 때가 더 많았단다. 엄마는 친구도 많지 않아서 중학교 때까지 쭉 학교와 집만 오가며 보냈던 것 같아. 참, 재미없게 살았던 것 같지. 동굴 속에 혼자 갇혀 있는 것 같은 어둠의 시간이었지만, 치열하게 엄마 자신에 대해 생각했었어. 거울 보며 나랑 대화도 많이 했고. 이때부터 엄마는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이랑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던데, 엄마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단다.      


 너는 방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니? 네가 그런 말을 했어. 방에서 지낼 때 핸드폰도 보고, 책도 읽는데 생각을 많이 한다고. 네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에 답도 찾아보고, 상상도 하고, 웃긴 것들도 떠올려 본다고. 이 말이 참 반가웠어. 너라는 실체와 점점 만나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었지. 그렇기에 사춘기에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한 거야.     


 너의 또 커다란 변화는 바로 아이돌 덕후지. 4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트와이스 언니들을 너는 지금까지도 4년 넘게 생활의 중심에 두고 있단다. 노래 좋아하고, 춤 따라 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언니들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앨범을 2개 이상 산다고 할 때, 굿즈를 사겠다고 1시간 거리까지 가자고 하고, 비싼 굿즈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모습들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 엄마가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래. 지금은 이런 부분은 뭐, 그러려니 하지만 요즘 또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지.      


 트와이스 안에서도 최애 하는 아이돌 언니의 생일에 카페 이벤트가 열려. 그 언니가 카페에 오는 것도 아니고, 카페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틀어주고, 포토카드를 선물로 주거나 뭔가 행사가 있는 정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에도 가겠다고 하고, 저기 먼 곳까지도 가겠다는 거야. 엄마랑 두 번 정도 가자 하더니 이제는 친구와 위치 다 알아서 3군데나 투어를 하고 오더라. 엄마와 두 번째 갔을 때 왜 가는지 진지하게 물어봤더니 너는 이렇게 말했어.     


“엄마가 강의 들으러 갈 때 신나서 가는 것처럼, 나도 다녀오면 뭔가 해내는 것 같아 뿌듯해.”            


 네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빗대어서 표현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 엄마가 좋아하고 설레서 뛰쳐나가는 시간처럼 너에게도 그런 마음이라는 거잖아. 바로 이해가 갔고, 꼬리를 내렸지. 네가 같이 와 줬다고 음료도 난생 처음으로 사 주고. 너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구나. 엄마가 너무 의미를 낮게 여겨서 미안해. 이 때부터 생일 이벤트 카페 간다면 허락해 주고, 같이 다녔지. 함께 가자하는 것도 고마워하면서 말이야. 그랬다가 브런치 글이 다음 메인에도 올라갔잖아. 우리 딸 덕분이지. 트와이스 덕후분들이 팬 카페에 글을 공유해 주고, 엄마를 좋게 봐줘서 엄청 뿌듯했었어.     


https://brunch.co.kr/@aracharim/43


 예전에 집단상담에 참여한 고등학생 언니가 이런 말을 했어. 공부도 못해서 성적도 떨어지고, 부모님한테 한 소리 들었을 때 속상하고, 나 자신이 싫어진대. 그럴 때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덕질을 한다는 거야. 깜짝 놀랐지. 사람들이 덕질을 하는 이면에는 건전하게 취미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나 자신이 싫어지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대신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가슴이 아팠어. 덕질이라도 해서 자신이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      


 너나, 그 언니가 하는 일에 적극 지지를 하고 싶단다. 너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일에 엄마가 너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할게. 엄마는 너와 같은 시기도 겪어봤고, 어른의 입장도 겪고 있어서 다 알고 있잖아. 어른의 시선이 맞다, 옳다 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두 시기를 겪으며 모두 포용해서 조화를 이뤄가도록 하고 싶어. 그게 엄마의 역할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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