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Aug 09. 2020

엄마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

편식과 인사로 걱정했던 날들

2. 엄마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


  딸아, 엄마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제일 무서웠단다. 어렸을 때 보이는 모습이 너의 인생으로 쭉 갈 것만 같았거든. 그러면 엄마의 책임이 너무 크잖아. 특히, 편식이 심하고 인사를 하지 않는 너를 보면 엄마 마음이 들쭉날쭉해져. 건강이 염려되고, 예의가 걱정되었지.


 너는 어려서는 음식을 먹을 때 새로운 것은 잘 안 먹으려고 하고, 골고루 먹는 편이 아니었어. 야채 쪽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매운 음식도 또래보다 심하게 매워해서 조금만 매워도 난리가 났지. 그러면 어른들은 걱정을 먼저 하셔. 편식하지 말아야 건강하다고 하면서 더 먹이려고 고민하게 된단다. 엄마도 그랬어. 어떻게 하면 잘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육아서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방법대로 해 보려고 했지. 야채는 잘게 다져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볶음밥 형태로 먹이려고도 하고, 예쁜 캐릭터처럼 만들어서 흥미를 높이면 좋다 해서 없는 솜씨에 나름 흉내도 내 보았는데... 너는 뚝심 있게 모두 거절하고 넘어가질 않았단다.      

 

유치원까지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너의 상황을 이해 부탁드렸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급식이 걱정됐어. 요즘 바뀌고 있지만, 예전에는 급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쪽이 강했거든. 음식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다 먹으라는 분들도 계셨고, 급식 자체가 영양사 선생님이 영양을 살피다 보니 골고루 나오잖아. 김치, 깍두기는 늘 나오는 음식이고, 매달 나오는 급식표를 받아볼 때마다 엄마는 한숨이 절로 나왔단다. 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는데 어쩌나 싶은 거지. 다행히 담임선생님들께서 억지로 강요하시는 분들은 아니셔서 네가 눈치껏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며 점심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 집에 오면 늘 급식시간이 힘들다는 말을 엄마는 들어야 했고.     


 그랬던 네가 4학년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이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랐어.      

“월요일에 두부를 만든대요. 세상에 어떻게 두부를 학교에서 만들지? 솔직히 말하면 이제 학교가 재밌어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학교는 왜 가야 하냐며, 짜증 내며 울던 아이가 갑자기 학교가 재밌어졌다고 하니까 놀랄 노자였지.      

“더 솔직히 말하면 공부도 재밌어졌어요. 수학도 막대그래프라 재밌고. 밥도 너무 맛있어요. 담은 반찬을 다 먹어야 다시 얻을 수 있는데 친구들이 먹방 하고 빨리 먹어서 어쩔 때 못 먹으면 너무 아쉬워요. 오늘 닭 강정을 입에 넣는데 껍질까지 정말 맛있었어요.”     

 3학년부터 급식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더니 확실히 4학년 되니 급식표를 열심히 챙기기 시작했었어. 일주일 나오는 음식을 확인해 두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기다렸다가 아침부터 햄버거, 떡볶이, 비빔밥, 돈가스 등 나온다고 신이 나서 가고. 급식시간에 먹어서 맛있었던 음식은 집에서도 또 해달라고 했잖아. 심지어 떡볶이도 맛있다며 김치, 깍두기는 이제 어느새 없으면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단다.     


 참 신기하지. 그렇게 입에도 대지 않던 네가 이제는 못 먹는 음식을 찾기가 어려워졌잖아. 아빠는 맨날 사람들한테 홍어도 먹는 애라고 말씀한단다. 6학년이 되니 음식 양도 늘어서 배 안 고프다고 해놓고, 막상 음식 먹으면 맛있다며 두 그릇씩 먹는 너를 보며 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겠어. 어렸을 때 안 먹으면 걱정돼서 안달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먹는다고 놀라고 있으니 말이야.     


 엄마도 어렸을 때 편식이 심했단다. 콩, 파는 절대 입에도 대지 않았던 생각이 나. 장아찌류도 안 먹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먹으니 그 맛이 좋더라. 어릴 때 골고루 먹지 않아도 자라면서 자연히 입맛과 식성이 달라지는 것 같아.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되면 다 잘 먹는다는 건 아냐. 각자의 체질에 맞는 음식이 있고, 절대 못 먹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더라. 엄마 친구들 중에도 해산물은 지금도 절대 안 먹는 분들 있고, 억지로 먹으려 하거나 왜 이런 음식도 먹지 않느냐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한 대. 음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욕구에 맡기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 건강을 생각해서 꼭 섭취해야 하는 것은 유연하게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가야겠지. 너의 경험만 믿고 편식으로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알려줬더니 그 아이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들었단다. 역시 사람마다 때가 다른 걸로!!!     


 인사하기도 마찬가지야. 어른들은 아이들이 인사를 잘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길 바란단다. 인사 잘하면 떡도 하나 더 준다는 말 있잖아. 엄마가 너를 키울 때 보니까 모두 인사 잘하는 게 아니더라.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인사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많았어. 너도 그런 편이었고. 아빠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네가 인사를 안 하거나 소홀히 하면 그 부분은 엄하게 가르치려고 하셨거든. 엄마와 아빠도 고민을 많이 했지. 인사를 자꾸 하라고 알려주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인사가 아니라 형식적인 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 끝에 엄마, 아빠가 인사 잘하는 모습을 더 열심히 보여주기로 했어. 어른들께는 물론이고, 택시를 타고 내릴 때도 기사님께 공손히 인사드리고, 택배기사님이나 음식 배달하시는 분들 오셔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렸지. 그럴 때도 움직이지 않는 너를 보면 마음이 조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다려 보는 거지. 네가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인사하기를 기다렸어.

 그랬더니 인사도 급식처럼 어느 날이 되니 변하더라. 택시라도 타면 엄마보다도 더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드리고, 내릴 때도 허리를 굽혀서까지 인사하며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를 하는 거야. 엄마가 오히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말이야. 동네 이모가 한 번은 엄마한테 네가 지나가는 데 인사를 잘해 줘서 기분이 좋아지셨다고 하더라고. 네가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던 마음에서 용기를 내어 표현한다는 것을 엄마는 알지. 너를 지켜봐 왔으니까. 네가 한 번은 인사할 때마다 가슴이 막 떨린다고 했었거든.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너의 마음이 사랑인 것 같아. 네가 인사하는 모습은 엄마가 봐도 참 따듯하단다.


 딸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아니더라. 참 다행이야. 함부로 너의 속도를 재단하지 않을게.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잎들은 때가 되면 피어날 거라고 믿고, 그저 엄마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 될 것 같아. 너의 필요와 상황들에 의해 인생은 얼마든지 수정해 갈 수 있음을 배웠어. 엄마 역시 그렇게 살아왔듯이 말이야.  

이전 07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너의 엄마 되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