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우리 딸에게 부러웠던 점이 있어. 친구나 사촌오빠, 동생이 잘 되면 진심으로 웃으며 축하해 주는 모습. 그게 뭐 별 거냐고? 대단한 거지~
네가 다니는 발레 학원은 매년 시험을 보잖아.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봤으니 6학년까지 벌써 5번째 시험을 봤네. 자격증처럼 시험을 보기 때문에 전공이 아니어도 성취감도 얻고, 뭔가 단계별로 얻는 게 있어 좋은 것 같아. 거의 다 시험 보면 합격한다지만 그 안에서도 점수의 차이가 있지. 점수가 좋은 사람들은 마지막 수료식 날 무대 위에 올라가서 공연을 할 수 있잖아. 언젠가 너도 이번에는 점수 잘 봐서 공연하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어. 함께 하는 한 살 위 언니는 거의 매년 올라갔거든. 우리 딸도 한 번 올라갔었고. 언니가 올라가서 공연할 때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실수하지 않고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는 너의 모습에 엄마가 감동받는단다. 같이 연습해서 누구는 올라가고, 너는 올라가지 못하면 속상하고, 질투도 날 텐데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웃어주는 모습이 내 딸이지만 정말 따듯했어.
너도 욕심이 있지. 합창단 단장은 6학년 때 뽑고, 4학년 때부터 계속 참여한 학생들이 선정 대상이라 너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그런 거 하면 부끄럽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왠지 내심 기대하는 것처럼 선거 날이 언제인지 등을 은근히 말해 주더라고. 떨리는 것도 같고. 엄마도 기대했는데 결과는, 몇 표 차이로 너의 베프가 단장이 되었어. 단장이 되면 합창단 대표로 앞에 나가서 상도 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인데 엄마는 우리 딸이 안 되어서 속상해할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나 씩씩하게 웃으면서 친구가 뽑혀서 잘 됐다고 해 주더라. 친구와도 더 친하게 잘 지내는 건 물론이고.
너에게는 사촌오빠가 두 명 있잖아. 3살 위, 1살 위 오빠 두 명 모두 매년 반장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전교회장을 하니 우리 딸은 임원을 하지 못할 때 기죽지 않을까 엄마는 또 염려했어. 뽑혔을 때마다 가족들이 다 칭찬해 주고, 대단하다고 말해주니, 비슷한 나이의 너는 그런 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속상할까 봐. 그러고 보니 엄마가 걱정이 좀 많다. 너의 진짜 속내는 모르지만, 이렇게 말했지.
“나는 반장 안 하고 싶어, 앞에 나가서 하는 거 절대로 안 하고 싶어.”
그럼, 그럼.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라고, 해 주었지. 그러더니 어느 날, 네가 학교 선거 관리단이 되었다는 거야. 전교회장 선거 등을 공정하게 감독하는 임무인 선거 관리단 원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네가 손을 들었고, 그중에 투표로 뽑혔다고. 깜짝 놀랐어. 네가 손을 들어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니까 그런 적이 없었어서 놀랐어. 그랬더니 그냥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지. 선거할 때 같이 다니면서 투표도 관리하고, 바쁘게 일정을 완수했을 때 정말 뿌듯해하더라. 오빠들처럼 전교회장과 달리 네가 하고 싶었던 일에 손 번쩍 들고 임무를 맡았다니 멋있었어.
엄마는 질투, 시기심이 많았어. 엄마에게도 같은 나이의 사촌 2명, 너에게는 이모들이 있단다. 어렸을 때, 같은 나이다 보니 비교가 많았어. 사촌들은 가정형편이 유복한 편이었고, 어려서부터 피아노도 오래 쳐서 대회도 나가서 상도 받고, 반장, 회장 등도 했어. 1등 했다는 이야기, 외고 들어가고 엄마를 대놓고 비교한 건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엄마 이야기는 별게 없으니 자존감이 내려가더라. 나도 나름 노력해서 중학교 때는 반에서 1등도 하고, 늘 3등 안에는 들었는데 내가 해낸 것들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 듯했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말수가 적은 편이셔서 엄마 이야기를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늘 묻히는 아이였단다. 그러다 보니, 사촌들의 성과에 축하해 주기가 안 되었어. 내 자존심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마음의 벽만 쌓아놓았지. 나이도 같고,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자매들처럼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거리감이 있으니 지금은 참 아쉬워.
다른 사람, 특히 가까운 이들의 성공과 성취에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있지만 함께 기뻐하고, 나눌 수도 있는데 마음이 지옥이 되는 거야. 웃픈 일이지. 다른 사람들이 더 잘 되면 뒤떨어질까 봐 불안했어. 나만 잘 해내지 못하고, 영영 이대로 안주하게 될까 불안해진다. 그 짧은 순간에도 엄마를 스스로 괴롭히는 생각들이 떠올라. 참 신기하지. 마음속은 보이지 않는데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짜여진 회로처럼 작동이 잘 되니. 엄마도 축하해 주고 싶은데 바뀌는 게 쉽지 않았어. 아마 30년 넘게 익숙해진 패턴이 있어서 습관처럼 굳어져서 그럴 거야. 그래도 무엇이 중요한지 깨우치고, 바뀌기로 마음먹으면 못 해낼 것도 없단다. 아무리 오래된 시스템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꿀 수 있어.
엄마도 지금은 깨닫고 있어. 나와 타인은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고, 길이 다르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 알아가고 있단다. 어쩌면 엄마가 너를 키울 때도 남들보다 더 잘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너를 보지 못하고, 남들을 의식한 게 컸을 거야. 남들에게 좋은 엄마라고 인정받기 위해 너를 엄마의 바람대로 크기를 강요하고, 요구했을 때도 있었어. 후회되고, 너에게 미안하단다. 그런 엄마였는데, 엄마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자신감을 갖게 되니까 다른 사람의 평가에 별로 신경이 안 쓰이더라. 이제 너의 장점과 빛나는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고, 부족하고, 필요한 부분은 채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으로 믿음을 갖고 있어. 내 안의 중심이 확실하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불안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거겠지.
이미 너에게서 사랑, 인정, 선함이 빛나고 있어 엄마는 기쁘단다. 딸아, 다른 사람을 축하해 주면, 그다음에 너에게도 기회가 올 거야. 또, 너의 성공에도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감사하고, 기쁨은 얼마나 커질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단다. 네가 감사와 축하를 건네면 돌아오고, 커지고 작은 눈덩이지만 선한 눈발이 모이면서, 굴리고 굴려져 커다란 눈사람이 된단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날씨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있어. 나의 마음가짐이 모두와 연결되어 있고, 영향력을 끼치게 되어 있어. 내가 선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아름다움들이 다가오게 되더라.
엄마의 마음속에 활짝 웃으며 마치 내 일처럼 팔짝 뛰며, 기뻐하는 너의 모습은 명장면으로 남아 있어.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이 엄마에게 스승이 되었단다. 소중한 가르침을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