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쿠키를 잘 만들지
아이가 6살 때쯤이었나. 아빠가 없는 어느 주말, 아이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진다.
- 엄마! 아빠는 쿠키를 잘 만들지?
- 응. 그렇지~ (그래, 남편, 잘 하고 있구나.)
- 아빠는 볶음밥도 잘 만들지?
- 그렇지.
대답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 하늘아, 그럼 엄마는? 엄마는 뭘 잘 해?
즉답이 안 나온다. 그래, 엄마가 해 주는 요리가 하도 많으니 생각을 좀 해 봐야 되겠지. 기대감에 차서 아이의 답을 기다린다. 골똘히 생각하던 아이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 대답한다.
- 엄마는 렌자렌지*를 잘 돌리지! (렌자렌지: 아이가 유아기 때 전자렌지를 부르던 말)
또르르.
또 있다.
아이가 9살 무렵. 학교에서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어 왔다. 열어 보니 좌우를 나누어 아빠를 위한 페이지와 엄마를 위한 페이지를 하나씩 적어 왔다. 좌측에는 아빠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이렇게 써 있었다.
- 아빠, 고맙습니다. 1. 우리를 잘 키워 주셔서 2.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셔서.
체계적으로(?) 번호를 붙여 써 놓았다. 우측에는 엄마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렇게 써 있었다.
- 엄마, 고맙습니다. 1. 잘해 주셔서 2. 맛있는 음식을 사 주셔서.
나는 이 두 사건을 (뒤끝있게도)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피식 웃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왠지 부끄럽고 치욕스러웠다. 학교 선생님이 다 보셨을 텐데 세상에, 대체 나를 엄마로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곧 한번 더 생각하니 '아니지,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잘 사 주면 뭐가 어때?' 싶었다. '엄마가 요리를 못 한다고 생각하면 좀 어때? 엄마면 다 요리 잘 하란 법 있어?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잘 사 준다는 건 음식을 살 돈이 있다는 건데 그럼 그게 다 능력 아니야? 능력 있는 엄마가 음식 잘 사 주는데 그게 뭐가 어때서? 자랑스러워 하자. 괜히 꿀리지 말자.' 나홀로 정신 승리의 대사로 무장을 했다.
피식 웃다가, 또 억지로 정신 승리의 대사를 쓰다가, 다시 생각하니 약간 화가 나기도 했다. 아침에 요리를 하는 건 아빠지만 저녁에 요리를 하는 건 분명히 엄마인데 왜 아이는 이렇게 생각하지? 퇴근하고 들어오면 빨리 저녁 먹이려고 미리 요리해 놓았다가 덥혀 주는 건데 그게 뭐가 어때서? 혼자 이랬다 저랬다 했다.
사실 아이가 건드린 것은 마음 속 깊이 숨겨 놓고는 없는 척했던,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이었다. 머리로는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가 즐겁게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흔히 '엄마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그것들을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리 여성학 책을 읽고 페미니즘을 공부해도 오랫 동안 영향 받아온 한국 사회의 전통, 문화, 관습, 고정관념, 성별 분업,,,, 그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가 힘들었다. 머리로는, 왜 엄마들은 맛있는 요리로, 빨래로, 집안 청소로 아이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빠들도 아이를 사랑하지만, 요리와 집안일로 사랑을 증명하는 이는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내 안에서는 자꾸 경찰관들이 튀어 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안에서는 늘 죄책감과 싸워야 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밖으로는 늘 세상의 고정관념들과 싸웠다.
아이를 낳은 후 내 아이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전통적인 엄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었다. 박노해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고 자주 들여다 보았다. 그의 시구대로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는" "내 삶을 똑바로"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게 가볍고 쉬운 목표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치열하게 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무나 많은 공부가 필요한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야 그 목표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많은 순간 깨어 있을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 덕분에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스무 살. 아이는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때가 되었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아이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아질 것이다. 이제 세부 목표를 조금 조정해 보아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사람이기보다는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빴던 엄마가 전자렌지에 데워 준 음식, 사다 준 반찬도 맛있게 먹어준 아이가 새삼 고맙다. 심지어 아이는 바쁜 엄마 덕에 많은 요리를 마스터했다. 바쁜 엄마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요리 능력을 개발해 준 아이가 새삼 고맙다. 아이는 자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배민'을 켜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먹고 싶은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만큼 더 자유로워졌으리라 믿는다.
- 엄마가 말했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자유로와진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