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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14. 2022

며느리만 시가에 전화하기 있나요?

그거 말고 양가에 전화하기 미션

- 우리 둘째 며느리는 목소리 한 번 듣기 참 힘들어.

- 그쵸? 예쁜 목소리 자주 들려 드려야 되는데 말이에요, 헤헤.


결혼 초, 어머님에게 전화한 어느 날, 어머님이 불평처럼 말씀하셨다.

결혼 초 전통적인 '며느리 미션' 중 하나는 바로 '시가에 전화하기' 미션이다. 어쩌다 한 번 솔직하게 불평을 하시긴 했어도 사실 시가 부모님은 잔소리 많은 타입은 아니시다. 그러나 저 성질머리로 결혼생활을 어떻게 할까, 걱정이셨던 나의 엄마는 '시댁에 전화 자주 하라'는 잔소리를 참 많이도 하셨다. 어쨌든 '시가에 전화하라'는 압박을 많이 받았던 셈이다. 엄마에게는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했다. 역시나 나는 양가 어머님의 말씀은 듣되 '달아달아밝은달아' (https://brunch.co.kr/@arachi15/6)를 시전했다. 말씀하시면 하시는대로 듣고 있었다. 왜냐. 부모님은 우리에게 원하는 걸 말씀하실 자유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다 듣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했다.


이런 배경에는 나의 20대가 있었는데, 나의 20대는 내 인생의 방법과 방향을 찾아가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부모로부터의 독립투쟁기'이기도 했다. 10대에 아버지의 반대를 이유로 16년 인생(ㅎㅎ) 최대의 좌절을 겪었는데 20대에도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아버지는 나를 꺾을 수 없었다. 나는 성인이고 내가 원하는 걸 내 힘으로 하면 되었다. 27살 쯤이었나, 집을 나와 있던 시기, 아버지에게는 특별히 장문의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저를 잘 키워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제 뜻대로 살겠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중재를 하기도 하고 변화해가는 딸에게도 먼저 적응하셨다. 저 편지 쓰기 전에도 엄마는 이미 "니가 오늘 집에 온다고 했니, 안 온다고 했니?" 전화로 물으실 정도가 되었다.


나는 나를 먹이고 재우며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를 먹이고 재우며 키워주신 분들이고 배우자의 존재 근거인 배우자의 부모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은 진심이다. 이런 마음으로 결혼 초에는 1-2주에 한 번은 전화를 드리려고 했다. 일단 엄마와는 그 정도 간격으로 통화를 했고 엄마에게 하는 만큼은 시가에도 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며느리만 '시가에 전화하기'?

단, 나는 '시가에 전화하기' 미션이 '며느리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해야 한다고 얘기되고 실제로도 하고 있는 많은 일과 역할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낯선 배우자의 부모와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되었으니 전화를 하면 앞으로의 관계에 도움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며느리'가 '시가'에만 할 일인가? 아니다. 나의 배우자도 나의 부모에게 그렇게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에 둘이 함께 '양가에 전화하기' 미션을 수행했다. 이게 '미션'인 이유는 의무라서가 아니라, 의식하지 않으면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말에 미션처럼 양가에 전화를 할 때는 항상 남편에게도 전화를 바꿔 주거나 각자 따로 양가에 전화를 드렸다. 각자 네 통씩의 전화를 한 적도 있지만 이건 살짝 무리가 ㅎㅎㅎ 양가에 '집전화'로 전화를 해 먼저 받으시는 분과 통화를 했다.

생신이나 제사 등 가지 못하는 경조사가 꼭 주말일 리 없으므로 집안 경조사에는 각자 한 번씩 전화를 드렸다. 나에게도 '며느라기'가 있었다. 왠지 경조사에 못 가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무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통화할 때도 '못 가서 죄송해요'보다는 '못 만나 아쉬워요'라고 말하려 애썼다. 특히 시가의 행사만 의무가 되는 것을 그대로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시가든 본가든, 모든 원가족의 경조사는 상황에 따라 갈 수도 있고 못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는 것을, 하는 것을 '디폴트값'으로,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양가 행사에 거의 비슷하게 가는 듯하다. 물론 일정에 따라 어느 쪽이든 못 가는 날도 있다.

결혼한 지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은 이렇게까지 미션으로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점점 전화 간격이 벌어지더라. 사실 이제 드문드문 전화를 하는데 아무도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으신다. 우리 부부도 이제는 서로 생각나는 사람이 자유롭게 전화하는 편이다. 자기 마음 내키는 만큼. 각자 집안의 경조사는 각자가 먼저 전화하고 배우자에게 잊지 말라고 서로 알려 준다. 나의 배우자는 이제는, 때때로 나보다 먼저 나의 부모님 근황을 알고 있을 만큼 처가에 전화를 자유롭게 편안하게 하는 사위가 되었다. 그것이 고마워 나도 한 번 더 전화를 하게 되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양가에 전화하기, 우리만의 팁

이렇게 하다 보니 점차 작은 디테일한 우리만의 팁들이 생겨났다.

첫째, 일단 경조사에 못 가게 되었다는 류의 어려운 전화는 미리 의논해두고 전화도 미리 드린다. 이게 좋은 점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해 곧바로 이번 경조사에 오는지, 안 오는지를 묻는 일이 안 생긴다. 그리고 혹시라도 시어머니가 나에게 전화해 방문이나 참석 여부를 물을 때는 언제나 남편과 상의하고 알려드리겠다고 말한다.

둘째, 어려운 전화일수록 각자 자신의 본가에 전화한다. 시가 행사에 참석을 안 한다거나 갑자기 못 가게 되었다거나 하는 류의 어려운 전화는 절대로 내가 하지 않는다. 서운해하거나 욕 먹을 일은 반드시 '자식'이 직접 전화한다. 욕을 먹어도 자식이 먹는다. ㅎㅎㅎ

셋째, 좋은 소식을 알리는 전화는 배우자가 한다. 보너스를 타서 용돈을 보내드리게 되었다거나 가지 못하는 경조사에 선물을 보냈다면 반드시 배우자가 전화한다. 부모님께 내려가기 전날 '내일 뵈어요' 류의 전화도 배우자가 한다. 칭찬받을 일, 기분 좋은 전화를 배우자와 나누면 서로 감정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ㅎㅎㅎ

넷째, 원가족 내의 주요 사안은 본인들이 다룬다. 시부모님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결혼하셔서 몇 년 전 선물로 리마인드 결혼식을 올려드린 적이 있다. 아이디어는 형님과 내가 냈지만 비용이나 각종 의논은 모두 형제들이 직접 했다. 우리가 그랬듯, 부부마다 비용, 일정, 장소 등을 협의한 것을 전제로 의논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 버릇해서일까, 지금은 어머님도 아버님도 집안의 주요 사안에 대해 내가 아니고 아들에게 직접 전화하신다. 내가 어려운 얘기를 시부모님과 나누어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효도란 무엇인가'

며느리에게 주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부모에 대한 '효도'이기 때문에 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라면 자신을 낳고 길러준 자식이 직접 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므로 남자의 부모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아들'이 직접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시부모님이 낳고 길러주신 건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추석,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보고 싶은 분은 링크 클릭 https://www.khan.co.kr/print.html?art_id=201809211922005)를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나는 종종 낯설고 불편한 일을 만날 때마다 그 '정체성'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효도란 무엇인가'.

예전엔 부모가 돌아가시면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살았다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효막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떤 도덕적 가치나 윤리도 시대와 국가, 사회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해왔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효도'의 의미에 대해 단순한 국어사전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부모에게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일반용어"라고 정의되어 있다.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하는 행위이므로 효도의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니 '효도'란 특정 행위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얼마에 한 번은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효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것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빌미로 여성에게, 며느리에게 특정 행위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눈 씻고 다시 봐도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효도라고 적혀 있지도 않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꼭 해야 하는 도리라고 적혀 있지도 않다. 혹시 며느리가 시부모 원하는 대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서 화가 나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부모의 문제이지 며느리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는 "왜 나는 며느리가 내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화가 나는가"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걸 어떻게 돌아보는 건지 궁금하면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같은 내새끼〉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국민 프로그램인데 대한민국 '화 많은' 시부모님들도 〈금쪽같은 내새끼〉 좀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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