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위해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아이를 존중하는 곳,
먹거리로 아이에게 장난치지 않고 투명한 곳,
아이를 햇빛과 바람과 하늘 아래 뛰어 놀게 하는 곳,
아이가 자기답게 자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몇 년 후 공동육아는 나의 일터가 되었다.
아이 키우는 양육자를
이해하는 곳이었다.
일의 재미가 쏟아지는 곳이었다.
일의 의미를 삶의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일터였다.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곳이었다.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공동육아를 먼저 하던 이들 입장에서 나를 볼 땐
공동육아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 한 명이 늘어난 것이겠다. 공동육아를 전파할 사람 한 명이 늘어난 것이겠다.
진심이 통한 것이겠다.
지금 나는 일터의 가치를 사랑하고 소중히 하며
더 많은 이들이 나처럼 아이 키우며 이 가치를 누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육아하는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육아가 더 이상 여성에게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질곡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그 가치들을 위해 일하며 계속 배우고 또 배워서
나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키고자 한다.
여전히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일하니까.
내가 바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성장하고 확대되기를 원하니까.
그런데 나의 일은,
더 많은 이들이 육아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이기와 이타는 통합된다. 나는 이기가 곧 이타이고 이타가 곧 이기인 곳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인생의 큰 선물을 받았다.
진정으로 사랑할 때 나는 나 자신을 확대하고 있으며, 나 자신을 확대할 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커진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면 줄수록 내 자신의 정신적 성장도 더욱 더 촉진된다.
나는 완전히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통해 성장함에 따라 내 기쁨도 증가하고, 그 기쁨도 계속해서 증대될 것이다. (주1)
베푸는 덕,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덕이다. (중략)
너희들은 스스로 제물이 되고 증여물이 되고자 한다.
너희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너희들은 모든 부를 너희 영혼 속에 쌓아두려는 갈망을 갖고 있다.
너희 영혼은 만족을 모른 채 끝없이 보물과 보석을 갈망하고 있다.
너희들의 덕이 만족을 모른 채 끝없이 베풀려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일체의 사물을 강요하여 너희들에게, 너희들 속으로 흘러들어오도록 한다.
그것이 너희들이 베푸는 사랑의 선물로서 다시 너희들의 샘에서 흘러나가게 하기 위해서.
참으로, 이처럼 베푸는 사랑은 모든 가치를 강탈해내는 도둑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이기심을 나는 건전하며 거룩한 것이라고 부른다. (주2)
주1> 스팟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주2>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표지 이미지> Image by Enrique Meseguer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