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했던 가장 쓸데 없는 일

엄마의 이불킥

by 아라

“내가 괜찮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




아이야.

네가 중학생이 되어 한동안 혼자 다닌 적이 있었어. 엄마는 모르고 있다가 네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너무 걱정이 되는 거야. 아마 엄마의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거야.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다녔지만 외로웠던 적이 있었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합창단 활동에 몰두했던 시기.

오전 자습 빠지고 노래 연습하고, 점심 시간에도 음악실에서 재빨리 도시락 먹은 후 함께 노래 연습하고, 수업 끝나자 마자 교실 청소 대신 음악실 청소 후 노래 연습하고... 그런 생활들을 한 학기 동안 하고 전국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 새 2학기. 1학기 내내 음악실에서 합창단 친구들과 연습하고 생활하고 어울리다가 2학기가 되어 반으로 돌아오니 친구들 관계는 이미 모두 만들어지고 난 후였어. 정신을 차려 보니 반에 친한 친구가 없더라고. 중학교 때 친구가 한두 명 있어서 함께 도시락 먹고 함께 다녔지만 뭔가 편안하지가 않은 시간이었거든. 아마 진짜 친구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관계였기 때문일 거야. 같이 다니지만 외로웠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너는 그런 시간을 겪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 거야.


어느 날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해 봐.' 했다가, 어느 날은 '그래, 천천히 서로 다가오거나 다가가게 되는 친구가 생길 거야, 괜찮아.' 했다가 엄마는 막 왔다 갔다 했지. 어떤 날은 걱정을 늘어 놓고 또 어떤 날은 괜찮을 거라고 했던 건, 엄마 마음의 혼란을 너에게 여과 없이 마구 표현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어.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된 그 잔소리들은 사실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비겁한 목소리일 뿐이었어.


그런데 그 소리들에 네가 말했지.

“내가 괜찮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


네 말을 듣고서야 엄마는 정신을 차렸어.

으악. 엄마가 혼자 소설을 쓰고 있었더라고. 공동육아의 울타리 안에서 늘 북적대며 자랐던 너의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 떠올리며, 왁자지껄한 중학교 교실의 친구들 틈에서 홀로 앉아 있는 네 모습이 떠올라 엄마를 조바심나게 했나 봐. 중학교 시절은 또래 친구들이 필요한 시기인데, 엄마가 그 필요를 대체해 줄 수 없으니 조바심이 났나 봐.


그런데 네가 던진 한 마디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났어.

'아! 얘는 나랑 다르지! 아 아이는 내가 아니지!'


너는 엄마가 아니잖아!!!!! 너는 엄마랑 다르잖아!!!!!


네가 괜찮다면 진짜 괜찮은 건데, 왜 혼자 걱정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을까.

엄마가 너의 상황을 하루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냈던 건 너와 엄마를 동일시했기 때문일 거야. 엄마의 경험으로, 몸은 친구들과 있어도 마음은 혼자였던 시간이 외롭고 힘들었기에, 너도 당연히 힘들 거라고 단정을 지어 버렸던 거야. 이건 공감이 아니지. 이건 투사(projection)에 불과하지.


너는 엄마와는 다른 고유한 존재인데, 너는 엄마와는 다른데, 어쩌면 너는 엄마보다도 훨씬 단단한 내면을 가진 존재인데, 엄마는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거야.


"내가 괜찮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 너의 반문은, '나는 엄마와 다르다'는 선언이었어. 그러니 너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경고였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너를 걱정하거나 너에게 개입하는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네 시간과 네 선택을 책임질 수 있도록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었어.


엄마는 걱정이 들었을 때 너에게 개입할 것이 아니라 엄마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어.

"이 걱정은 아이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이 걱정은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나 자신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가?"


대부분의 답은 후자에 있었어.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를 위한 것, 너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감정에 원인이 있는 것. 결국 엄마의 이기심일 뿐이고 엄마의 이기심이 빚어낸 세상 쓸데 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었어.


그렇게 말해 주는 네 모습이 너무 의연해 보이고 단단해 보였어. 조바심내며 일관성조차 없는 조언을 했던 엄마가 낯부끄러웠어.

아이야. 네가 엄마보다 낫다. ㅎㅎㅎ


'걱정' 그게 뭘까?

엄마는 이 일을 거치면서 걱정은 '불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

네가 아직 어리고, 너는 아직 부족하고, 너는 외로움을 견딜 힘이 없다는 불신.


네가 살면서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을 텐데, 그건 그 누구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또 제거해야 할 일도 아니지. 어려움이나 시련은 마땅히 겪어야 할 삶의 선물 같은 것인데. 네가 혼자 지내는 시간은 소외의 시간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인데. 제거하고 없애 버려야 할 일이 아니라, 충분히 겪을 가치가 있는 일인데. 너의 상황은 '문제'가 아닌데.


바꾸어야 할 것은 너의 상황이 아니라 엄마의 태도였어.

엄마의 걱정이, 엄마가 너의 등 뒤에 매달아 준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되면 안 되었어. 너는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엄마의 불안한 시선, 엄마의 걱정이 너의 발목을 잡게 하면 안 되었어. 엄마는 엄마나 잘 하면 되는 거였어.


걱정은 엄마가 너의 등에 매단 무거운 모래주머니 같은 것이었어.

걱정은 '사랑'이 아니라 '불신'의 다른 이름이었어.


아이야.

엄마는 그 날부터 엄마의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어. 너에게 모래 주머니를 매달아 주는 일, 너의 발목을 잡는 일, 너를 걱정하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어. (결심했다고 매번 잘 되었던 건 아니라는 걸 고백한다 ㅎㅎㅎ)


네가 혼자 밥을 먹든, 친구와 시끌벅적하게 떠들든, 그것은 네가 선택하고 네가 책임질 너의 삶의 풍경이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네가 세상으로 나갈 때 등 뒤에서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는 것,

그리고 네가 돌아왔을 때 언제든 쉴 수 있는 단단한 나무가 되어주는 것뿐임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어렵든 즐겁든 마땅히 정성껏 살아나가는 것을 보여주며 엄마의 인생을 사는 것뿐이었어.


네 인생의 길에서 너도 때로 넘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경험들이 모여 너만의 ‘상식’이 되고 너만의 '방법'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 너의 ‘힘’이, 너의 '고유성'이 될 거라고 이제는 믿는다.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에게 무례함을 행하지 않을께. 더이상 너를 걱정하지 않을게.


스무 살이 되었고 너는 꼭 스무 살에 맞추어 엄마에게서 독립하게 되잖아.

그럴 때 엄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뭘까.

그건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닐 거야.


엄마가 독립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네가 어떤 상황에 있든 너는 스스로 잘 해낼 힘이 있다는 믿음”이겠지.


엄마보다 단단한 나의 아이야.

엄마보다 나은 나의 아이야.


이제는 엄마에게 그 믿음이 있기에,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엄마는 이제 간섭 대신 응원을, 걱정 대신 믿음을 선택하려고 해.

엄마의 믿음이 너의 방패가 될 거라 믿는다.


사랑한다, 아이야.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탐색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 도널드 위니콧


아이는 스스로 자라납니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 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아이를 깎으려 하지 마세요. 아이라는 꽃이 스스로의 색깔대로 피어날 수 있게 햇볕과 물이 되어줄 뿐, 그 꽃잎을 억지로 벌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 법륜


표지 이미지> Image by Thomas B.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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