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계속 https://brunch.co.kr/@arachi15/352)
네가 스무 살이 됐는데,
네가 다 클 정도면 엄마도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엄마가 너무 어리더라고.
너는 잘 커서 스무 살이 되었고
스스로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재수를 선택했고,
그렇게 너는 이제 너의 선택을 하고 너의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그런데...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스무 살의 너를 보며 엄마도 꿈을 키워 보려고 했더니,
거기에 자꾸 ‘자격이 없다’는 마음의 소리가 엄마의 발목을 붙잡더라고.
존경하는 분의 행적을 쫓다 보니 너무나 위대한 삶을 살아오신 것만 같고,
훌륭해지지 못하더라도 이제라도,
그런 삶이 어떤 삶인지 한번 살아보고 싶어지는데,
내가 그 길을 따라 살 자격이 있나, 하는 마음.
그분의 꿈을 따라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못 된다는 자격지심...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꿈을 꾸고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훌륭한 꿈을 꿀 수 있다는 마음...
그건 격(格)에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그건 자격(資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그건 자격지심(自激之心)이기도 했어.
그렇게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 주말 저녁이었어.
아빠와 저녁을 먹다가, 좋아하던 ‘유퀴즈 온 더 블록’을 보려고 OTT를 켰어. 너도 알지? 게스트와 이야기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 그날은 대유행 중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를 만든 메기강(강민지) 감독이 나왔더라고.
그는 ‘가장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대. 그런데 그가 말하더라고.
“제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격이 되나? 그런 것도 많이 생각했어요.”
“솔직히, 제가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학교도 안 다녔고 한국에서 오래 안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얘길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데 엄마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어.
‘뭐! 저렇게 멋진 애니메이션을 만든 감독이 ‘자격’을 생각했다고?‘
그는 20년이 넘도록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맨 처음 20년 전 일을 시작할 때부터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었대. 그런 프로젝트가 있으면 일하고 싶었대.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럼 내가 해 볼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어.
그런데 실제로는 한국을 잘 모르는 거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니까.
우리 식구들 이 영화 같이 봤잖아. 디테일이 살아 있었지.
산책할 때 아주머니들이 쓰는 선캡, 식당에 가면 수저 밑에는 냅킨 놓기, 김밥에 컵라면 먹기, 멀쩡한 소파 두고 마룻바닥에 앉기. 한국 특유의 문화들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우리도 웃었잖아.
그런데 그게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어.
모르니까 그는 한국에 와서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장소들을 찾아다녔어. 사진으로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스텝들과 함께 장소들을 다니면서 음식을 함께 먹고 냄새도 맡고 분위기를 직접 경험했어.
그렇게 모르는 것은 배워가며,
몸으로 직접 경험해 가며,
한땀 한땀 만들어진 영화더라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영화 한 편을 만들었더라고.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
7년.
아. 7년이 걸렸대. 자그마치 7년......
영화가 공개되던 날 기분이 어땠냐고 하니,
영화 공개 시간이 밤 12시인데 그 시간까지 기다렸대.
그렇게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는데, 너무 기뻐서 막 눈물이 나더래.
그랬겠지.
왜 안 그랬겠어.
20년 전에 다가온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영화 한 편을 만들겠다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만들었는데.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거든요.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난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안 만들래.’ 그만큼 제 마음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인데...”
20분의 인터뷰를 보았을 뿐인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어.
오랫동안 하나의 꿈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은 저런 거구나.
꿈이라는 건 저런 거구나.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는 거구나.
마음에만 품고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하는 거구나.
저렇게 한땀 한땀 만드는 동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했겠다.
아이야.
엄마가 본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인터뷰가 아니었어.
엄마가 본 것은 ‘꿈이 가는 길’이었어.
아이야.
꿈꾸는 데는 자격이 필요 없구나.
꿈에 다가간다는 건 오랫동안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구나.
아이야. 꿈꾸는 데는 자격이 필요 없단다.
꿈꾸는 데는 자격이 필요 없다고
엄마 자신에게 골백번 얘길 해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날 그걸 보고 나니 갑자기 믿게 되더라고.
아이야.
엄마도 이제 꿈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가 10년 전에 월급은 반밖에 못 받는 자리로 옮겨 왔어도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했던 이유가 그거였더라고.
지금 하는 일이 엄마에게는 의미와 재미와 행복을 주었더라고.
그 의미가 엄마에게 언젠가부터 꿈으로 찾아와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작은 싹을 내고 있었나 봐.
우리가 공동육아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왔듯이,
더 많은 아이와 엄마들이
이웃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꿈.
ㅎㅎㅎ 꿈이 너무 크네.
엄마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네. ㅎㅎㅎ
그러니 큰 꿈을 마음에 품고
그런 방향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면 될 거야.
그래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
아이야.
엄마 말이야.
꿈이 커도, 꿈을 당장 이룰 수 없어도 꿈을 가져도 되겠지?
꿈꾸는 데는 자격이 필요 없는 거 맞지?
엄마는 엄마의 '꿈의 길'을 갈게.
엄마도 이제는 그것을 믿어.
그러니 너도 마음껏 너의 꿈을 꾸기를.
이제 너의 세상에 너만의 그림을 그려 나가기를 응원한다!
P.S.
이렇게 작년 내내 함께 책을 썼던 작가님들이 이번엔 책을 편지극으로 변형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두 권의 책이 3회의 공연으로 올라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물려 주고 싶은 정신을 담은 편지.
작가님의 아이들이 객석에서 보는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저는 그 분들 옆에 함께 서 있으려고 합니다.
저처럼 함께 가서 보실 분들은 아래 링크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Z4R2VoCVZjnu1j7FOnxVFrJ1a5LaNKu4G7H4Q3GRHTvBsQ/viewform
글에 들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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