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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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새로운 계획을 하기 딱 좋은 시간.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고 일어나기 시작했어.
가까이에 새벽마다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 분들이 계셔서, 엄마도 한 번 해 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 새벽 기상이었거든. 그런데 엄마에게 진짜 간절한 마음이 있었나 봐. 몇 개를 맞추어도 들리지 않던 알람 소리가 한 번에 들리더라고. 그렇게 엄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어.
네가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재수를 결심했던 시점이기도 했을 거야. 네가 그렇게 어려운 결심을 했는데 엄마도 엄마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어. 엄마는, 네가 꿈을 향해 가는 시간에 방해가 되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았어. 너에게 못지 않게 엄마도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엄마는 늘 네가 등 뒤에서 엄마를 떠밀어 주는 것을 느꼈거든. 엄마도 엄마답게 잘 살아 보라고, '내가 보고 있다'고 말이야.
일터에서 엄마가 하는 일을 맨 처음 시작한 분이 계시다고 했잖아.
엄마는 행사에서 그 분을 추모하는 짧은 순서를 준비하고 있었어. 순서를 준비하기 위해 사진을 정리하고, 활동하셨던 내용을 담기 위해 돌아가신 선생님의 글을 찾아 탐독했지. 그러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어.
그 분은 늘 꿈꾸는 분이셨다는 거야.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꿈이 있었기에, 20대 청년 시절부터 부모가 모두 공장에 나가고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았을 테지.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꿈이 있었기에 북한에까지 아이들을 만나러 다니며 그곳에도 어린이 병원을 지으셨을 테지. 몇 사람이 시작한 작은 일이 지금 엄마의 일까지 오래도록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은 결국 '꿈'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엄마는 추모 영상에 'OO의 꿈'이라는 제목을 붙였어.
그렇게 엄마의 마음 속에는 그 분의 꿈을 따라가며 살고 싶다는 작은 꿈이 피어나기 시작했어.
그 분은 엄마가 생각하기에 너무 훌륭한 삶을 사셨거든. 엄마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새벽에 일어나면 책을 읽었어. 엄마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지. 오래 전 멋진 선생님들과 함께 1년 동안 공부했던 니체의 책도 다시 꺼내 보고 신영복 선생님 책도 꺼내 보고...
그러면서 결혼하고 너를 키우며 잊고 있던 '미래의 엄마'를 그려보게 되었어.
사실은 일터를 그만 둘 시점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
고참이 되었다고 꼰대 짓이나 하고 있을 거라면 그만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
엄마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더 남아 있을까 싶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행운이 찾아 왔어.
5년이나 붙들고 추진해 왔던 일, 꿈꾸어 왔던 일 하나가 이루어진 거야. 엄마는 뛸 듯이 기뻤어.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덤벼 들면 안 되는 일은 없구나.
이 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구나.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면 그만 두려고 했는데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 있구나.
그리고 존경하던 선생님들이 오랫 동안 꿈꿔 왔던 꿈의 조각을 붙들고 엄마도 그 꿈의 한 조각이 되어 이어 나가고 싶다는 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 아이들과 어른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엄마가 하는 일이 더 많은 이들과 더불어 숲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꿈.
그러면 기뻐야 하잖아?
그런데 너무 괴롭더라고.
왜냐하면 작은 꿈들이 엄마 안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넌 그렇게 훌륭한 사람 아니거든!"
"네가 뭔데? 네가 대체 뭔데 그런 꿈을 꾸는데?"
"네가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있어?"
"네가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있어?"
"네가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있어?"
메아리처럼 엄마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햇어.
여름 쯤이었던가, 우연히 드라마를 보는데 엄마 같은 아이가 나왔어.
고아원에서 자라 자립하게 된 청년이었는데 부동산 사기를 당해서 그나마 얼마 없던 돈마저 날리게 된 거야. 같은 건물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는데 오직 자신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런 상황이면 화를 내야 하는데,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라고.
"제가 진짜 재수가 없나 봐요."
그 청년도 마음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말했을 거야.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 있었으니 나는 재수 없고 운 없는 사람이라고.
'저는 어릴 때부터 운이 없었어요.'
'그랬으니 저 같은 사람이 잘 될 리가 없죠.'
그 청년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도 비슷했어.
엄마가 또 다른 엄마에게 말했어.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
네 꿈은 20대에 다 지나갔잖아.
그 이후로는 그저 즐겁게 흥겹게 행복만 쫓아 살아왔잖아.
그래도 공동육아 만나 아이 잘 키웠지. 그 정도면 됐어.
현재에 충실하게 살았잖아. 그 정도면 됐어.
애도 다 키웠는데 그냥 편하게 살아.
네가 흘륭한 사람이 되겠다니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있어?
게다가 그런 훌륭한 분들을 따라 살겠다니, 그게 되겠어?
철 들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철이 없네. 나이값을 해야지.
그런 일은 훌륭한 분들이 하시는 거지, 너 같은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야.
재수하는 동안 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가 새벽마다 읽은 글들을 종종 적어 너에게 인터넷으로 편지를 보냈잖아. 지나고 보니 그 글들도 사실은 너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지만 엄마 자신에게 했던 말이기도 했어.
어려운 선택을 한 네가 자랑스럽다는 이야기,
지금의 어려울 수도 있는 시간이 너에게 아주 큰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이야기,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지 말라는 이야기,
마음껏 꿈을 꾸어도 된다는 이야기,
꿈을 품고 지금 한 발씩 걸으면 결국 언젠가 그 무엇이 되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
엄마는 내내 괴로워하며 자신과 싸우며 자신을 설득하며 그렇게 한 해를 보냈어.
네가 스무 살이 됐는데,
네가 다 클 정도면 엄마도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엄마가 너무 어리더라고.
네가 세상으로 나가는데,
나름 너와 아빠와 잘 살아 온 것 같은데,
그런데, 갑자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주말 저녁이었나?
아빠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다가온 장면이 있었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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