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연습합니다

by 정아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참여자로, 진행자로 함께 하며, '몸으로 배운' 것들을 하나씩 기록합니다.

말로 가르친 것은 금방 잊혀집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내내 느꼈습니다. 관객이 되어 쳐다 보았다고 자기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수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려면 몸을 물에 담궈야 합니다. 수영하려면 물에 담긴 채, 팔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몸으로 직접 배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됩니다. 때로는 잊을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소통 활동'입니다.


모든 참여자들은 두 명씩 짝을 짓습니다. 두 명은 의자에 앉은 채로 서로 마주보고 앉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무릎이 닿기 직전입니다. 서로의 말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도록 다른 분들과 적절히 떨어진 곳으로 자유롭게 자리를 잡습니다.


진행자는 1분 간 대화를 나눌 주제를 제시합니다.

"오늘 이야기 나눌 주제로 '나의 소울 푸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 어떤가요?"


요즘 좋아하게 된 음식도, 오래 전부터 좋아한 음식 아무거나 상관 없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정말 좋아하는 한 가지 음식을 떠올립니다. 1분 간 그 음식에 대한 묘사도 좋고, 자신이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좋고, 얼마나 자주, 누구와 먹는지 등등 해당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 주면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주제 중 하나네요 ^^


둘씩 짝을 지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입니다. 먼저 A가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모드 시작합니다. 이 때 B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A가 하는 말을 끊거나 끼어 들면 안 됩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지는 않으면서 온 몸의 에너지를 집중하여 A가 하는 말을 잘 듣는 것이 해야 할 일, 미션입니다.


시작! 진행자는 정확히 1분을 잽니다.

모든 구성원들 중 절반이 A의 역할, 즉 1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하는 역할이지요. 대부분의 A들은 신나게 이야기를 합니다. 또 B들은 A의 이야기를 듣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1분 후 진행자는 이야기를 멈추도록 안내하고 지금의 느낌과 생각을 기억하도록 요청합니다. 그리고 나서 서로 짝을 바꾸어 또 1분을 진행합니다.


이제 두 번째 모드의 시작입니다. 두 번째 모드는 첫 번째 모드에서 했던 이야기,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반복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B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B는 먼저 이야기하는 역할입니다. 이번에는 약간의 연기력이 필요합니다. 아까 신나서 했던 음식 이야기를 가능한 한 토씨 하나 다르지 않도록 반복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A가 먼저 듣는 역할입니다. 듣는 순서인 A에게는 미션이 있습니다. 조금 더 연기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메소드(method) 연기를 펼쳐야 합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하여 영혼까지 동화되는 듯 하는 연기, 그것을 해내야 합니다. A가 이번에 해야 하는 역할은 가능한 한 B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입니다. 소리는 내지 않고 조용히 딴짓을 하는 연기를 합니다.


진행자 역할을 하고 있을 때면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듣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말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눈에 띄게 변화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공간의 소리가 작아지고 1분이 되기 전에 말이 조금 더 빠르게 마무리되어갑니다.


활동이 모두 끝나면 두 번의 소통 활동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나눕니다.

먼저 두 번의 활동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찾아 나갑니다.


에너지를 집중해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듣지 않을 때 무엇이 달라질까요?

말하는 이들은 집중해 들어줄 때 목소리가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집중해 들어줄 때 같은 이야기도 더 길어진다고 합니다.

집중해 들어줄 때 몸도 앞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집중해 들어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에너지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듣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듣지 않는 마음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상대에게 전해지는 에너지가 있다고 합니다.

듣는다는 행위는 귀로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듣는 행위는 몸으로 하는 것 아닐까요, 듣는 것은 온 몸으로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 또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온 몸으로 이야기하는데 설겆이한다고, 식탁 치운다고 집중하지 못했던 순간들,

앞에 앉아 이야기 나누다가도 핸드폰으로 온 카톡 확인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참여자들은 소통은 온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머리로만 알 때가 많습니다.

안다면 몸으로 알아야 합니다.


진행자인 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참여자들은 스스로 온몸으로 배우며 느낀 것, 찾아낸 것 한두 가지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소통을 자주 생각하던 어느 날, 발견했습니다.

Listen이라는 단어는 Silent라는 단어와 철자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소름.



우리는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 우리의 손, 우리의 몸짓 전체가 하나의 언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사회와 고독>


진심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열어 상대의 존재를 수용하는 행위다.

- 틱낫한, <화>


대화란 두 존재가 서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신체적 사건이다.

-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글에 들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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