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울

전학이 싫었다

by 아라온

처음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 13년 만에 인천의 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간 분양사무실에서 나와 동생은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야? 너무 좋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아파트로의 이사는 그러나 1년 뒤에나 가능했다. 그전까지 살 집이 우리 가족에게는 필요했다. 마침 친척이 외국으로 급작스레 나가며 처리하지 못한 집이 하나 있었다. 서울 ㅊ동에 있는 낡은 일본식 주택이었다. 1년 동안만 여기에서 참고 살면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이사는 두렵지 않았다.


전학은 그러나 달랐다. 서울로의 전학.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내게 더 좋을 것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인천 아파트로 이사 가더라도 서울로 계속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어떻겠느냐고도 제안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전학이 대수냐며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국민학생 때의 일이다. 중학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이제 겨우 두 달 즈음되었을 때라면 더욱이 그렇다. 중학교는 국민학교보다 보다 더 복잡했다. 지켜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늘어났다. 모두 같은 옷을 입었지만 자기를 드러내려는 친구들도 많았다. 규율과 반발의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상황이 중학교에서는 늘 일어났다. 그 속에서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친구들을 알아가고 선생님들을 겨우 파악했다. 그런데 전학이라니 말도 안 된다. 전학을 갈 수 없다고 엄마에게 선포했다. 1년 동안 편도 2시간의 통학을 감내하겠노라고 말이다.



아빠와 함께 아침 6시에 눈을 뜬다. 늦어도 6시 4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의 아침 풍경이다. 부천에서 근무하는 아빠를 따라 차를 타고 부천역에 간다. 거기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학교로 간다.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하교 후 학원을 들러 공부하다가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부천역으로 간다. 가족 중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아지게 된 것이다.


왕복 4시간을 함께했지만 아빠와 나는 주로 침묵했다. 무뚝뚝한 아빠와 더 무뚝뚝한 딸은 필요한 말만 했을 뿐이다. '오늘은 아빠가 회식이다' '나는 오늘 4시에 끝난다' '다녀오겠습니다' 등.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차 안에서 못다 한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나 쓰러져 잠을 잤다. 아빠는 라디오를 틀고 운전을 하다가 이따금 담배를 물었다. 그럴 때면 아빠의 말동무가 되고 싶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다 나오는 말이라고는 '아, 담배냄새!'였을 뿐이다.


무뚝뚝한 아빠가 사실은 다정한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한번 있다. 겨울방학이었다. 통학의 고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방학 중에 학교에서는 보충학습이라는 것을 했다. 눈이 많이 온 어느 날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집으로 전화가 왔고 담임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선생님은 부모님을 바꾸라고 했다. 그때 아빠가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 많이 혼났다.(사실 나는 전혀 혼나지 않았다. 눈이 많이 왔으니 아빠는 오히려 가지 말라고까지 했다.) 내일은 보내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빠가 내게 웃음을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장난스러운 웃음이었다.



7살 이후 다시 7년 만에 하는 주택생활이다. 낡은 집이라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과 이따금 쥐를 마주칠 수 있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지낼만하다. 열악한 시설 환경 속에서 그럭저럭 지낼만하다고 한 것은 딱 하나, 거실 창 너머의 풍경 때문이다. 커다란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남산이다. 중간에 가로막는 고층 빌딩도 보이지 않고 남산이 가까이 보인다. 계절에 따라 다른 꽃이 피고 나뭇잎의 색이 변한다. 겨울에는 흰 눈을 덮어 꽃이 피지 않아도 아름답다.


그 겨울 우리 가족은 중국 시리즈물에 빠졌다. <의천도룡기>로 시작해 <삼국지>까지 수 십 편의 시리즈물을 보며 겨울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엄마와 아빠, 나와 동생은 덕후가 되어갔다. 부모님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려 비디오 가게에서 서너 편을 빌려 연달아 보기를 수일 째 하고 있었다. 겨울방학 보충학습에 가지 않은 것도 날씨는 핑계였을 뿐 아마 비디오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공범이었던 아빠도 그래서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ㅊ동은 더디게 변하는 곳이다. 어쩌면 예전의 그 낡은 집이 그대로 있을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골목을 걸어 올라간다. 골목 초입에는 빵집이 있었다. 새하얀 크림 케이크를 유리창 쪽으로 둬 지나가며 늘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곳이었다. 빵집은 사라졌지만 빵집만큼이나 유혹적이었던 치킨집은 그대로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ㅊ동이다.


살던 집은 없어졌다. 그 자리에 빌라가 있다. 하마터면 찾지 못했을 그 자리를 찾은 것은 여전히 주택으로 남은 맞은편 이웃집 덕분이다. 주택을 밀어내고 골목에 들어선 빌라들 사이에 오롯이 남아있는 주택이다. 그 앞에서 남산을 바라본다. 전에 없던 고층빌딩과 먼지가 남산을 뒤로 밀어냈다. 그래도 아직은 남산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위안하며 골목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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