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 없어?
"누나 고모 된대!"
수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들떠있다. 결혼을 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올케가 임신을 한 모양이다. 방금 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나오는 길이라며 임신 2주 차라고 전한다. 그다지 뜨거운 밤을 보낸 것도 아닌데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며 아빠가 된다는 기쁨과 설렘에 잔뜩 상기되었다.
"어쩜, 한 번에 그렇게.. 축하한다."
동생과의 통화 후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온다. '동생네가 임신했단다'라며 짐짓 흥분된 목소리다. 아직 임신하지 못한 딸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좋은 기색을 숨긴 채 말한다.
"우리 딸은 어떡하지?"
"내가 뭘? 나는 나고 걔는 걔지!"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엄마에게 대거리를 한다.
" 우리 딸이 먼저 임신해야 되는데... 괜찮아?"
엄마의 그 질문이 나를 더 속상하게 만든다. 울컥하는 마음이 솟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안 괜찮아. 기분이 이상해. 뭔가 찝찝하다고'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
결혼 직후부터 주변의 지인들은 '좋은 소식 없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밥은 먹었니?'같은 인사말인 줄 알지만 그 말에 예민해졌다. 정작 아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남편과 나는 그 말이 불편했던 것이다. 생기는 아이를 안 낳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 지극히 사적인 부부의 임신을 다그치는 듯한 태도가 싫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무시하거나 흘려들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가족, 친척들이었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가깝고 안 볼 수도 없는 혈연관계들. 결혼 2년 차에 접어든 올 설 연휴는 지옥과도 같았다. 시댁에서 명절 음식을 하고 어마어마한 설거지를 치는 것뿐만 아니라 '임신 소식은 없어?'라는 친척들의 한 마디씩을 차곡차곡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친척들의 등살은 시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머니는 친척들이 돌아간 후 나직이, 하지만 강경하게 말씀하셨다.
"용하다는 한약 집이 있다. 같이 가자."
처음으로 시어머니 앞에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며느리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한약 복용의 당위성을 무려 한 시간에 걸쳐 설명하셨다. 남편의 개입이 없었다면 언제 끝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30대 중반이 지나서 한 결혼이다. 이미 오랫동안 혼자 사는 데 익숙한 남편과 나는 꽤 이기적이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양육의 책임을 동반하기에 그렇게 갈구하지는 않았다.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이 별로 없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합의했다. "하늘이 주시면 낳지만 계획하지는 말자"고.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대한, 민국, 만세 때문이다. 배우 송일국 씨의 아이들을 TV로 보면서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 졌다. 순수하고 예의 바르고 애교도 넘치는 그 아이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TV를 떠난 아이들을 계속 보고파 인스타그램에서 송일국 씨를 팔로잉 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올라오는 삼둥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남편도 부쩍 길가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준다. 남모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웃는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이를 원하게 된 것이다.
마음은 먹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아이 소식이 없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우리에게도 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다. 부모도 친척도 아닌 바로 남편과 나.
동생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면서도 부럽고 또 질투 나고 조급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