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광역버스를 탄다

by 아라온

서울역 근처에서 이른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이다. 서울역행 버스는 족히 네다섯 대나 되는데도 전부 만원이다. 만원이다 못해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두 어대를 그냥 보내고 그나마 사람이 덜 있다 싶은 버스에 오른다. 에어컨을 튼 버스에는 냉기가 돌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많다. 의자와 의자 사이의 좁은 통로에 자리를 잡고 서서 손잡이를 꽉 움켜 잡는다. 앞자리에 앉아 부족한 아침잠을 자고 있는 낯선 이가 괜스레 미워진다. 언제 내리려라 하는 생각으로 노려보게 된다. 몸이 지치는 출근길은 마음을 옹졸하게 만든다.


경기도 난민이란다. 서울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경기도로 쫓겨나다시피 서울을 떠난 사람들을 신문에서는 경기도 난민이라고 불렀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집은 경기도에 있어 출퇴근 시간만도 왕복 두 시간은 거뜬히 되는 나 같은 사람이 경기도 난민인 것이다.


난민에게 광역버스는 구세주와 같다. '막히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서울시내를 1시간 내로 진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운이 좋은 경우에는 불과 몇 십분 만에 서울 땅에 들어설 수도 있다. 새로 생기는 경기도 내 도시에서 저마다 '서울이 겨우 몇 정거장' '서울까지 몇 분'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것은 그래서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아주 긍정적인 시각으로 최상의 경우를 가정하고 말했을 뿐이다.



현실은 좀 다르다. 너무 많은 출퇴근 난민이 생긴 탓인지 서울로 진입하는 길은 늘 붐빈다.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로 구간에서 잠시 숨통이 트였다가 서울 시내로 진입해서는 다시 답답한 체증이 시작된다. 서울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GTX로) 불과 몇 정거장이고 서울은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았을 경우) 한 시간 이내의 거리지만 이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경우인 것이다.


입석 승객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게 했던 1년 전 그 날보다는 그래도 낫다. 버스 기사의 급 브레이크에 자칫 넘어질 뻔했지만 최소한 발을 동동거리며 지각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졌으니 말이다. 기다리는 승객을 외면하고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는, 그저 규율을 지켰을 뿐인 버스 기사를 향해서도 에먼 원망을 쏟아낼 일도 없어졌다. 앉아야만 탈 수 있는 버스를 타려고 좀 더 이른 시간에 나오는 수고도 더는 하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라면 다행이다. 어김없이 만원인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생각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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