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호랑이
어쩌면 호랑이가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전래동화 '해님과 달님'에서 시장에 나간 엄마를 잡아먹고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오누이 앞에 나타난다. 호랑이가 무서워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 해님과 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호랑이가 엄마였을지도 모른다"고 유명한 작가가 해석했다. 엄마는 상냥하다가도 어떨 때는 무섭게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는 존재. 동화에서는 엄마의 두 얼굴을 그런 식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쩐지 위로가 되는 해석이다.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엄마의 이중성.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랑으로만 아가를 대하겠노라 다짐했는데 낳아놓고 키워보니 절대 그게 되지 않는다. 작고 연약한 아가들은 말을 못 하고, 그래서 그 속을 알 길이 없고, 초보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모르니 쌍방이 속 터지기는 매한가지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10초도 되지 않아 찾아오는 후회로 아이에게 미안해한다.
아기가 돌 즈음이 되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된다. 좋고 싫다는 표시를 하고 원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 18개월을 전후로 하여서는 짧은 단어를 말하고 엄마의 손을 이끌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전달한다. 조금씩 사회화가 되어가는 아가들과의 생활은 답답하기만 했던 돌 이전과 비교하면 한결 수월하다. 단지 아이의 고집과 주관이 생기면서 떼가 는다는 것이 힘든 점이다. 아이의 떼는 엄마의 화를 부른다. 참아야지 생각하고 다짐했으면서도 그만 욱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내 얼굴이 어떨지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웃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면 이를 보던 아가들이 움찔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서럽게 끄억 거리기까지 한다. 그럼 또 10초도 안되어서 죄책감이 든다. 왜 참지 못했을까. 나라는 인간의 인격에 실망한다.
잠들기 전에는 늘 고해성사를 한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화를 냈구나.' 반성하고 '내일은 안 그래야지' 다짐한다.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 육아툰을 보게 된다. 다른 엄마들도 나와 같음에, 욱하고 소리 지르고 후회하는 그런 모습에 조금 위안을 삼는다. 호랑이가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는 누군가의 해석이 그래서 더욱 와닿기도 했다. 전래동화에서 마저도 엄마의 이중성을 그렸다면 현재 내가, 또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태는 아주 오래된 것이란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어가는 데 겪을 수밖에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단계라는 방증인 것이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이 예쁜 순간을 휴대폰에 기록해 본다. 자고 일어나 웃으며 다가올 때, 하원 시 엄마를 보고 꺅 소리를 내면서 발을 동동거리며 반가워할 때, 엄마와 장난치며 놀자고 등 뒤에 매달려 까꿍 할 때, 아이를 재우려 잠든 척하는 엄마에게 다가와 슬며시 뽀뽀할 때, 잠자리에 같이 누워 엄마를 보고 씩 웃을 때, 잠이 안 오면 엄마 배 위에 올라 통통 뛸 때, 엄마 배 위에 입으로 푸우하고 소리를 낼 때, 아이 둘이 가끔 서로를 보고 웃으며 좋아할 때, 아이 둘이 떨어져 자다가도 어느샌가 잘 때 붙어 있는 걸 볼 때 등. 떠 올려 보니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예쁜 아가들이 내 자식들이라는 게 그저 고맙다. 부디 내일은 아가들에게 인상 찌푸리지 말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