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음속 걷잡을 수 없는 태풍

by 아라온

"태풍 온대? 오고 있어?"

어린이집에서 태풍 이야기를 들었는지 연신 태풍 이야기다. '바람이 휙휙 분다'라고 '태풍이 무섭다'라고 태풍이 싫다'라고 말하며 첫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내가 물리쳐 줄게. 얍얍" 둘째가 다독인다. 세 돌을 앞둔 아이들은 이제 자유롭게 말을 한다.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알게 됐고(다른 말로는 고집이 세졌고) 공감 능력도 발달했다. 대소변을 가리는 일도 가능하다. 어느 정도는.


지독한 더위는 밤까지 지속됐다. 뜨거운 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27도를 육박하는 저녁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힘들다. 에어컨을 켠 채 시원한 수박을 먹는 게 즐거움이 되는 여름밤이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수박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모두 팬티에 오줌을 싸 버렸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밤에는 수박을 안 줘야겠다.' 결심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더운 밤이었다. 에어컨을 끄고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들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불을 끄고 함께 방에 누웠지만 잘 생각을 안 했다. 첫째가 누우면 둘째가 깨웠다. 둘째가 누우면 첫째가 깨웠다. 둘이 함께 시시덕거리고 어두운 거실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놀았다. 목이 마른 지 식탁 위에 놓인 물도 벌컥벌컥 잘도 마셨다. 어둠 속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놀고서야 비로소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아이 옆에서 잠든 나는 축축한 것이 팔에 닿는 느낌에 눈을 떴다. 아이가 바지에 또 실수를 한 것이다. 둘 다.


이번에는 '자기 전에는 물도 마시지 않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물을 마시면 꼭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오줌을 뉘이고 자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수박을 이른 저녁에 줬고 자기 전에는 물도 되도록 마사지 않게 했다. 잊지 않고 화장실에도 데리고 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제일 먼저 첫째 아이의 바지부터 만져봤다. 다행히 실수하지 않았다. 역시 대소변을 잘 가리는 첫째였다. 뒤척이는 둘째에게 다가가는데 냄새가 먼저 말해 줬다. 진동하는 찌린내. 손을 뻗어 바지를 만져보고는 더 확실해졌다. 또 실수를 해 버린 둘째였다.


태풍이 오니 조심하라는 안내문자가 빗발치는 아침이었다. 젖은 둘째 아이의 옷을 벗기고 씻긴다.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과 달리 아이는 샤워기의 물줄기가 그저 신나 또 헤밁은 웃음을 지으며 좋아한다. 그 모습에 질투 난 첫째가 화장실 앞으로 달려와 변기가 아닌 그 자리에 서서 오줌을 싸 버린다. "하-". 짧은 탄식과 함께 분노 버튼이 눌리고 나는 이성을 잃는다. 미친년처럼 소리치고 아이 둘에게 모두 화를 낸다. 그 모습에 첫째가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안아달라고 애원한다. 그래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두 아이를 다그치며 씻기고 다시 닦이고 뒷정리를 해준다.


홀딱 벗은 채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엄마에게 언제 혼났냐는 듯 즐거워한다. 잔뜩 화가 난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려 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본다. 화가 날 만한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거친 말투와 거친 표정과 몸짓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을지 뒤늦게서야 걱정이 된다. 금세 또 마음이 불편하다. 속상하다. 아프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집안을 청소한다. 아이의 물건에서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가 소리를 쳐도 엄마가 화를 내도 엄마가 좋다는 너희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괴물 같았던 내 모습이 너무도 괴롭다. "태풍 괴물 싫어, 무서워"말하던 첫째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날 보고 한 말일까.' 쓰린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린다. 소리치지 말아야지. 예쁜 말만 해야지. 다짐, 또 다짐하면서.

엄마는 오늘도 후회하고 반성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리는 그런 곳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