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너희가 나를 깨우친다

by 아라온

아이들이 졸업과 입학을 했다. 나의 마지막 졸업은 자그마치 20년 전이니 참으로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겪어 보는 졸업과 입학이었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가 뜀박질을 할 수 있게 되고, 말 못 하던 아이가 말을 하게 되었으니 어린이집은 참으로 고마운 곳이었다. 졸업하는 날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노래와 율동에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젖병 물던 아기가 이 만큼 커서 내게 '사랑한다'라고 노래를 불러 주다니. 그간 육아로 겪은 고생에 보답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결국 어린이집 문을 나설 때 선생님이 "어머니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해줄 때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슬픔도 잠시, 예비소집일과 입학설명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언제나 기대와 걱정으로 설렌다. 가정 어린이집과는 다른 유치원의 분위기. 조금은 더 학교 같은 분위기의 교실과 규모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그러나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라 있었다. 예비소집일에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활발하게 노래하고 운동하고 놀았다. 입학을 하고 나서도 아이들은 쉽게 적응을 했다.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이 더 재밌다는 말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스며들어간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입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회를 할 거라고 알려 왔다. 운동회라는 말을 얼마 만에 듣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됐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체육대회를 했던 것도 근 이십 년 전이다. 세월만큼 늙은 나와 나보다 더 늙은 남편은 운동회 소식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5월, 운동회 날이 다가왔다. 아직 스포츠 경쟁은 잘 모르는 5세 아이들. 유치원 막내들은 달리기 호루라기에도 출발선에 서 있기 일쑤고 줄 다리기도 어떻게 당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모두 그저 귀엽게 바라보고 잘했다 칭찬해 준다. 부모님 경기는 걱정과 달리 적극적인 엄마와 아빠들이 많아서 출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운동 경기 관람이 재미있듯 우리 부부는 열심히 뛰고 힘을 쓰는 다른 학부모들을 구경하고 응원하는 것에 열광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운동회의 재미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신경은 경기보다는 온통 선물에 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쯤 되니 이 운동회는 아이들보다는 부모님들을 위한 것 같았다.


쉬는 날이면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매주 한 주도 거르는 일 없이 집 밖을 나가야만 했다. 가까이는 동네 뒷산이나 집 근처 놀이터를 갈지라도 우리 부부는 늘 어디론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집 안에서의 육아가 더 힘들기에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에는 아이들이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고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근교 나들이 장소를 섭렵하게 되었다. 계절마다 지역 축제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우리 부부 둘이었더라면 결코 가 보거나 해 보지 않았을 일들을 접하게 된 것이다. 주말에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유튜브, 넷플릭스만 보고 있었을 남편이 활동적인 사람이 되다 못해 적극적으로 여행지를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사람 많은 곳은 꺼려하는 나도 아이들을 위해 좀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내 입에는 노래하는 로봇이 들어 있어요."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에 아이가 천진한 대답을 들려줬다.

"엄마, 쓰레기 많이 버리면 지구가 아프죠?"

오래전 읽어 준 책에서 들은 내용을 아이가 잊지 않고 되묻는다.

"엄마가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춰야 된다고 했어요"

춤을 어쩜 잘 추냐는 할머니의 칭찬에 아이가 한 말이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아이에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혼을 냈더니 울면서 내게 말했다.

아이들은 나와 보낸 순간을 몸으로 새기고 있다. 놀라우면서도 조심스럽다. 나쁜 말이라고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지켜 주고 싶다.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아이는 이미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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