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만큼 어려운 글쓰기
내가 글쓰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딱 여섯 글자로 정리할 수 있다.
'생각이 많아서'.
내 마음에 담긴 이야기들을 종이 위 또는 스크린 위에 쏟아부어놓고 퍼즐 조각처럼 맞추며 원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될 때도 있고, 비극이라고 여겼던 일들을 정리해 놓고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사실 희극이었다는 것을 느끼며 허무하게 웃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을 괴롭혔던 그림자들이 조금 옅어지거나 귀여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때 느끼는 희열이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하는 것 같다. 이런 좋은 기억들이 하나둘 쌓여서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번역을 좋아하는 것도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자라난 글에 대한 사랑에서 남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는 것의 재미 느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에이전시를 통해 의뢰받은 번역 일은 마감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를 재촉해 주고, 저자가 이미 문자로 써둔 내용이 있다는 측면에서 접근이 쉽다. 그 때문에 나의 글은 매번 번역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내 안에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는데, 남의 글을 옮겨 적다 보면 나의 글을 쓸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내가 내 글을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글을 쓰려면 나를 드러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그리고 드러낼 이유를 찾지 못해서 상대방이 아주 편한 사람이 아닌 이상 대화 중에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내가 드러나지 않는 글을 쓰는 게 가능할까? 허구의 소설을 쓰더라도 내 생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내가 쓴 글이란 걸 알게 되는 게 싫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쌓아둔 여러 글들도 발행하지 못하고 나만의 일기처럼 묻혀있다. 또 내 생각은 계속 변화하는데 글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시간이 흘러 생각이 바뀐 뒤 읽으면 부끄러워질 글을 발행할까 봐 두렵다. 이런 이유로 내 글을 쓰지 않고 번역을 하는 나는 비겁한 걸지도 모르겠다. 글은 쓰고 싶지만 내 생각을 세상에 내놓을 용기는 안 나고, 작가 뒤에 빼꼼 숨는 느낌(물론 내가 번역을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다^^).
하지만 나는 번역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번역으로 나의 글쓰기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종종 떠오르고, 책을 번역하면서 '와 이걸 이렇게 이런 단어로 묘사했네?'라고 감탄하는 순간도 있지만, '아 나라면 이 부분을 이렇게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은 책 표지에 역자명을 많이 적어주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번역가는 작가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한 권의 역서가 완성되는 데 작가만큼 번역가의 역할도 정말 큰데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나의 글들을 볼 때, 원문 내용에 발이 묶여서 왠지 기가 죽어있는 것 같아 보이는 나의 번역문들을 볼 때 안쓰럽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번역가들이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출간하고, 번역과 창작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거겠지.
언젠가 나만의 문장을 실은 내 책이 출간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