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그레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란

by Ara

우연히 알게 된 단어, '고잉 그레이'.


흰머리를 반기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탈모보다 낫다곤 하지만 여전히 반가운 손님이라곤 할 수 없는 흰머리. 이 골칫덩어리를 염색하지 않고, 오히려 멋스럽게 활용하여 스타일링하는 것을 '고잉 그레이'라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트렌드의 연장선에 있는 키워드다.


나는 20대 후반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20대 초반부터 염색을 즐겨했기에 별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색으로 계속 뿌리염색을 했기 때문이다(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내 예쁜 검은 머리를 다른 색으로 염색하려고 했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 흰머리가 처음으로 문제가 된 건 코로나 발생 직후였다. 코로나로 인해서 미용실에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흰머리가 뿌리 염색을 하지 못한 두피 쪽에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전엔 있는 줄도 몰랐던 자리에서 흰머리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도 코로나 시기에는 조금 진정이 된 뒤 마스크를 하고 염색을 하러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진짜 문제가 된 건 마스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였다.


바로 임신이다.


요즘에는 임신 중에도 파마 염색 다 한다고는 하지만, 내 머리를 오랫동안 담당해 준 미용사 선생님은 임신 중에 파마는 하더라도 염색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셨고 이런 의견을 무릅쓰고 다른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할 만큼 나 스스로도 임신 중 염색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또 내가 매일 어디 출근하는 직장인도 아니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외향형 인간도 아닌데 굳이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고 멋을 내야 하나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임신 출산을 거쳐 나는 1년이 넘어가도록 여전히 염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어린 아기를 돌보고 있는 엄마로서, 그리고 임신 중과 마찬가지로 굳이 염색을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가끔 외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긴 하지만, 친한 사람들한테는 아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안 친한 사람들은 실례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관심이 없어서 못 본 건지 오히려 흰머리에 대해 묻지 않더라.


아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뿌리염색을 하지 않으니 두피도 가렵지 않고 머리카락도 덜 빠지는 듯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잉그레이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남들의 시선 때문이다.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다니면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 같아 보일까 괜스레 걱정된다. 나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어딘가에 숨고 싶어 진다.


흰머리를 숨겨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시작한 걸까? 사람들은 주름살처럼 흰머리를 그저 노화의 한 특징으로 여겨 미워하게 된 걸까? 왜 노화의 특징들은 늘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는 걸까? 노화란 우리 모두가 본능적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인가? 근육 손실, 체력 저하 등 건강에 직결되는 노화 현상은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지만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고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하는 건 오히려 그대로는 두는 편이 스스로에게 더 이득일 텐데. 앙상한 가지에 수북이 쌓인 새하얀 눈처럼 흰머리를 사랑할 순 없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흰머리 염색을 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란 나에게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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