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확실히 아이가 생기니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건 맞는 것 같다. 어쩌면 아이가 생겨서라기보다 나 스스로 나이 들어서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탓일지도.
원래도 또래에 비해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운동 꾸준히 하기, 나쁜 것(과자, 탄산음료 등) 많이 안 먹기, 오래 앉아있지 않기 등 지금 돌이켜보면 소소한 것들 위주로 챙겨 왔다. 출산 전의 나는 어쩌면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큼직한 3대 요소인 의식주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때는 챙길 필요가 없었다. 의식주 중에서 식, 주에 해당하는 살림은 늘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로 여겼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중요하다는 동화적 사고에 젖어 의를 챙기는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1. '의'
나이가 어리니 재질이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나니까 얼굴이 칙칙해지고 뱃살이 늘어나고 어깨와 허리가 굽었다.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밖에 나가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기 싫어졌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패션 트렌드를 선도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래된 옷은 버리고 단정하고 깔끔한 옷을 계절별로 상하의 한 세트씩은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옷을 안 챙겨 입다가 챙겨 입으려니 캐시미어 니트 하나에 통 넓은 슬랙스 하나 장만하는 데도 이틀이 꼬박 걸렸고 수선하러 옷매장에 2번이나 다녀왔다.
2. '식'
결혼 준비를 하면서 요리학원을 다녔다.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해서 살림하려고 요리를 배운다고 생각했지만 오래전부터 요리를 배우고 싶단 생각을 해왔었는데 그냥 결혼 준비 시기가 휴직 시기랑 겹쳐서 등록했다. 요리 열정 뿜뿜 하던 시절,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나는 안타깝게도 매우 힘들고 실생활 요리와는 동떨어진 한식 조리사 과정을 신청하고 거대한 한식 조리사 준비 키트까지 구매해 버렸다(이 키트는 아직도 못 버렸다). 뭘 배우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하고 신청한 과정이었지만, 한식 조리사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무엇보다 요리가 맛이나 실용성보다는 재료 손질 스킬과 플레이팅 등 형식적인 과정이 우선인 수업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뭔가를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둔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 수업은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일단 재미가 없었고,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요리를 조금 해 먹다가 서로 일이 바빠지면서 요리를 할 여유가 없어져 외식 위주의 생활을 했다. 코로나 시기가 되어서 외식도 어려워지자 생활비의 90%를 배달앱에서 사용할 만큼 배달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임신 중에는 그래도 아기를 생각해서 조금 차려 먹으려고 했지만 입덧 중에는 냉장고도 못 열정도로 입덧이 심했고, 막달에는 배가 너무 많이 나와 설거지하기가 힘들어져 다시 배달앱을 들락거렸다. 출산 후에도 잘 챙겨 먹어야지 하면서도 몸이 너무 힘드니까 제대로 된 요리는 하지 못했다.
내가 요리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게 된 계기는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이다. 시판 이유식으로 하려다가 그래도 시도는 해보고 포기해야지 싶어서 야심 차게 교보문고에서 요즘 가장 인기가 많다는 '뿐이 토핑이유식' 책을 구매했다. 초보 엄마가 만든 이상한 요리도 와앙 잘 먹어주는 우리 아기 덕분에 요리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 오래도록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락하게 된 지인이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영향을 받기도 했다.
3. '주'
출산 전부터 집안 가구를 재배치하고 짐도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기가 생기니 더욱더 정리할게 많아졌다. 아기 짐이 점점 더 쌓이니 나름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나에게 우리 집은 너무 맥시멀 해졌다. 물건 많은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기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지저분한 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조금씩 정리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집이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느낌이 든다.
의식주를 챙기다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신경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을 잘 못 자는 약간의 불면증이 있는데, 잠이 들려고 하는 타이밍에 아기가 깨서 잠을 거의 못 자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5시간 자면 많이 잔 날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요즘 의식주를 챙기느라 몸살이 났다고 하면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당분간은 출산 후 몸 회복을 위해 내려놓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 레이더에 들어온 의식주 챙기기는 쉽게 내려놓아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또 의식주 챙기기에 재미를 느껴버렸다! 당분간 몸은 힘들지만 이 의욕 불타오르는 순간을 즐겨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