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고양이

24시간이 모자라

by Ara

아이가 태어난지 어느새 반년이 다 되어간다. 꿈틀거리는 덩어리(?) 같았던 아이는 이제 이유식 의자에도 혼자 앉고 기분 좋을 때는 돌고리 소리도 내고 아주 귀여운 인간의 모습을 갖춰가는 중이다. 아이가 조금 크고 출산으로 너덜너덜해진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니 바쁘게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너무 아무일도 안하고 늘어져 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하고 싶은 것들이 두더지처럼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건 나의 본업인 번역. 샘플에 몇 번 충동적으로 도전하기는 했으나 막상 샘플이 통과된다고 생각하면 해야할 다른 일들이 떠올라 막막해졌다. 이제 이유식 시작해야 하는데, 시판 안사고 직접 이유식 만드는 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예쁘게 하고 싶어.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러다가 남편이랑 나랑 둘다 병걸릴 것 같아. 요리 다시 해볼까? 미뤄왔던 운전 연수도 얼른 받아야 나중에 아이랑 외출도 할텐데. 결혼하고 산 커튼 세탁을 한번도 안했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고장나기 시작했네? 출산으로 망가진 몸 회복하려면 운동하러 가야지?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제출한 샘플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내 체력에 이 모든 걸 다하면서 번역까지 하기엔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번역보다 가사와 육아가 더 중요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마감이 밭은 번역을 하기엔 제약이 있으니까, 그동안 내 글이나 많이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출판번역이지만 생각보다 마감이 넉넉한 일은 잘 안들어온다)


우리집 고양이를 보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몹시 바쁘다. 하루도 빠짐없이 쭉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뻣뻣해진 털 하나 없게 몸을 단장하고, 배고프지 않게 밥이랑 물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대소변도 아무데나 보지 않고 딱 나올 타이밍에 맞춰 모래통에 가서 조용히 용변을 본 뒤 모래까지 야무지게 덮는다. 지나가는 사람들, 날아다니는 벌레들 관찰도 하고, 여름엔 시원한 바닥에, 겨울엔 따뜻한 바닥을 찾아 뒹굴거리는 시간도 빼놓지 않는다. 하루에 낮잠 2번 정도는 필수! 좋아하는 사람 무릎에 머리 박치기도 잊지 않고 꽁 해줘야지.


나는 당분간 고양이의 하루에 글쓰기를 추가한 삶을 살 생각이다. 그런데 고양이처럼만 살려고 해도 너무 바쁘다. 여기에 아기고양이까지 돌봐야하는 고양이라면? 24시간이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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