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생각이지만
지난달까지만해도 우리 아기는 실내에서는 잘 걷지만 신발을 신고 야외에서 걷는 것을 무서워했다. 여름부터 기온이 비교적 선선한 새벽시간에 매일 밖으로 나와 걷기 연습을 한 덕분인지 계절이 바뀔 즈음 우리 아기는 밖에서도 잘 걸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시간씩 외출을 한다. 실내보다 야외가 더 유익할 것 같단 막연한 생각에 오래전부터 다녀온 문화센터 수업은 환불받았다. 그동안 문화센터 수업에 꾸준히 갔던 가장 큰 이유는 또래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는 우리 아기에게 어른이 아닌 인간을 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다. 요즘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시간대를 잘 맞춰서 나가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외출이 힘들어질 때까지 최대한 많이 나오려고 한다. 오전과 오후에 야외활동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밥도 더 잘먹고 잠도 더 잘잔다. 특히 밤잠을 잘자는데, 10시간은 기본이고 12시간까지 자는 날도 있다.
우리 아기는 마음에 드는 또래를 만나면 먼저 다가가 관심을 표현한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이 귀엽다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부끄러워하며 엄마 뒤에 숨는다.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하지만 늘 호기심은 많아서 조금씩 시도는 한다(내가 다 안아서 올려줘야해서 집에 갈때쯤 되면 나만 땀범벅이된다). 매일매일 엄마의 도움을 받아 같은 동작을 시도하다보면 오르지 못하던 계단도, 내려오지 못하던 미끄럼틀도, 어느 날 혼자 올라탄다. 아직 불안해보여서 뒤를 쫓아다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올라가지 못하는 놀이기구에도 성큼성큼 올라타겠지. 우리 아기는 내가 누렸던 인생의 즐거움은 물론, 내가 누리지 못한 인생의 즐거움까지 모두 만끽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영영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던 유아식도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평온한 일상의 루틴이 잡히자 단조로운 일상 때문인지 약간의 우울감이 생겼다. 지난 몇 주간 매일 아침 함께 산책을 했던 동네 아기 엄마가 출근을 시작해 더 이상 공동육아를 함께 하지 못하게 된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는 아기 엄마를 만났다. 아기와 함께 산책할 때와는 달리 예쁘게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입은 모습. 반갑기도하고 부럽기도 했다. 이제 정말 오래됐지만, 회사에 출근했었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당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매일 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울었다. 당시에는 회사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못가게 하는 감옥처럼 느껴졌었다. 회사에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고, 기한을 정해놓고 다니고 있었던 터라 끝이 정해져있는 일과 였음에도 나는 끝까지 회사를 즐겁게 다니지 못했다.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돌아오지 않을 그 시기를 끝까지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기를 데리고 아침 일찍 나가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많이 마주친다. 새삼스럽게 학창시절이 그리워진다. 당시의 나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학교가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이때도 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끝이 정해져있는 이 시기를 왜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여겼을까 아쉽다. 그러다보니 지금 이렇게 아기와 함께 보내는 30대를 10년, 20년 뒤에 돌이켜보면 아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지금을 돌이켜본다면 얼마나 그리울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기의 모습까지 더해져 더더욱 아쉬울 것 같다. 여러 SNS 글귀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상한 생각이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지겹다고 느낀 현재의 찰나가 미래의 나에게 얼마나 아쉬운 순간이 될 수 있는지를 자꾸 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