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하기는 고난도 사회 스킬
얼마 전, 식사에 초대받아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고맙다는 말은커녕 내가 준 선물에 대한 언급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마치 선물이 그 자리에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줬을 때 이런 반응을 받아 본 게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민망했고, 무안했다.
선물은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의 표현이다. 상대방이 어떤 물건을 좋아할지 고민해서 줘야 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받을수록 큰 감동을 받는다. 그만큼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선물은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된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 서비스, 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고민을 많이 한 선물이라고 반드시 비례해서 상대방의 취향에 맞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 많이, 오래 고민했다고 해서 더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고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선물은 기본적으로 고마운 것이다. 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나를 생각해서 시간과 노력, 더 나아가 돈을 썼단 뜻이기에.
한편, 받아서 난처한 선물도 있다. 예를 들어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데,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장신구를 선물 받았다면 난처할 것이다. 집이 비좁아서 공간이 없는데 거대한 곰돌이 인형을 선물로 받는다면 표정 관리를 하기가 조금 힘들 것이다. 이처럼 선물을 할 때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고, 좋은 마음으로 준비했으나 오히려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드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내가 준비한 선물 역시 그에게 '난처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핸드워시, 핸드크림 등의 무난한 선물을 줘야 한다. 무성의해 보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난처한 선물이 되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선물하기는 고난도 사회스킬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선물을 한다는 건 선물을 '전달'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까지 포함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상대방의 반응이 내 기대에 미쳐야 비로소 선물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함을 느껴왔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위한 이타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왔지만, 알고 보니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전달' 그 자체에만 의미를 뒀다면 이번 일에서 상처받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처를 피하기 위해 "난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선물을 하지 않을 거야."처럼 극단적인 결론을 내릴 필욘 없다. 여느 사회생활처럼 이번에도 적당히. 선물도 적당히, 상처도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