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줌마

귀는 열고 입은 '잘' 열고

by Ara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지인이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는 새에 때를 놓쳐 결혼을 못한 지인,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이직하며 커리어에 영향을 받은 지인의 이야기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내 딴에는 중심을 잡고 양쪽의 사례를 다 말해줬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내가 조언이랍시고 꼰대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말을 마무리 짓고 자리를 떴다.


원래 상대방에게 말을 하며 가르치려 하기보다 듣고 배우는 걸 좋아했던 나지만, 결혼, 특히 출산을 겪은 후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늘어놓는 영락없는 '꼰대 아줌마'가 돼버렸다.


결혼과 출산을 겪고 나면 시야가 갑자기 확 넓어지고 깊어진다. 잔소리라고 생각하며 듣기 싫어했던 어른들의 말이 하나 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아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들이 많다. 동시에 결혼과 출산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다 어린아이 같아 보이면서 나의 이 깊은 깨달음을 가르쳐주고 싶어진다. 그들이 하는 말과 고민이 가볍고 사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거나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가치 없게 여겨선 안된다. 의식적으로 귀를 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만이 모두가 선택하는 길이 아닌 요즘 세상에 내가 그들보다 경험이 더 많으니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됐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결혼과 출산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동안 다른 세계로 시야를 확장했을지 모른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의 말에 귀를 열자.


그리고 혹시라도 나의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실 전달의 목적에 집중하며 이야기하자.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계속 설득하려 들면 안 된다. 요즘 육아에 대한 고민이 많다 보니 먼저 아이를 키워본 육아선배들이 여러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과 형편이 다르고 내 환경을 누군가에게 100%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사려 깊은 조언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배들의 조언은 참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기대에 조언을 구해보지만 문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오래 고민한 사람이 나이므로 내가 처음 생각했던 방향이 정답에 가장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배들의 정성스런 조언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어떠한 결정이 맞았는가 틀렸는가를 평가하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나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들이 가장 잘 찾을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중에 조언을 구하면 내가 이미 고른 선택지의 장점을 더 많이 파헤쳐서 알려주는 친구가 있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이미 어느정도 결정을 내린 상태인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정말 명확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마음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살피고 그 결정을 지지해주는 말을 해줘야겠다. 그러려면 '귀는 열고 입은 닫기' 보단 귀는 열고 입은 '잘' 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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