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밥 하는 삶
엄마 없이 사는 삶의 가장 큰 고통은 '밥 챙겨 먹기'가 아닐까. 엄마와 함께 살 때는 늘 먹을 것이 있었고,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건 숨을 쉬는 것처럼 내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았지만, 고등학교 때는 급식이 있었고, 대학교 때는 학교 근처에 맛있고 저렴한 식당이 많았고, 출산 전에는 자유로운 외식이 가능했기에 요리 실력 없이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하지만 출산 후 건강한 요리만 넣어주고 싶은 입이 하나 생겼다.
요리는 내가 운전과 함께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잘하게 될 거라 생각했던 분야다. 하지만 운전과 마찬가지로 요리도 꽤 오랜 시간에 걸친 시행착오가 필요했고 생활화되어야 했다. 요리 수업을 듣거나 일회성으로 가끔 하는 요리로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기의 밥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아기의 밥을 챙겨줘야 하는 이 시기야말로 내 요리실력 증진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유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쉽진 않았지만, 죽은 냄비에 넣고 끓이면 됐고 고기와 채소는 찌고 차퍼에 넣어 다져주기만 하면 됐다. 이유식을 하는 동안 다양한 식재료의 손질법, 보관법, 특성에 대해 배웠다. 덤으로 어떤 재료가 옷에 묻었을 때 잘 지워지는 지도 배울 수 있었다. 적채를 찌면 정말 예쁜 보라색이 나오는데, 엄청 진한 보라색이지만 옷에 묻어도 잘 지워진다. 반대로 사과 간 것은 색이 옅지만 정말 안 지워진다. 우리 아가는 어떻게 조리해 줘도 잘 먹었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토핑이유식과 자기 주도 이유식을 병행했다.
이유식에 익숙해지자, 새로운 난관이 닥쳤다. 아기에게 밥태기가 온 것이다. 아기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던 아기가 어느 날부터 음식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꾹 다물었다. 손에 쥐어주면 우걱우걱 먹던 채소 스틱들도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몸무게까지 줄어들기 시작하니 너무 걱정이 되어 밤에 잠을 설쳤다. 찾아보니 밥태기가 왔을 때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한동안 브런치에 글쓰기는 물론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 오로지 아기 밥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재료를 사서 한 번에 찌고 갈아서 얼려뒀다가 해동해서 주기만 하면 됐던 이유식과는 달리 유아식은 같은 재료를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았고, 어울리는 조합도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하루 세끼 다른 메뉴를 구성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밤마다 유아식 책을 붙들고 다음날 먹을 식단을 짰다. 얼렸다가 준 음식은 잘 안 먹어서 최대한 신선한 냉장 상태로 요리할 수 있도록 재료의 재고 관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아기가 좋아하는 메뉴가 몇 가지 생겼고, 책을 보지 않고도 몇 가지 요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유아식을 시작한 지 100일 정도 지나니, 어울리는 조합으로 나 혼자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레시피를 혼자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아기 밥에 간을 조금 더하면 어른 밥이 된다. 초반에는 아기 밥을 만들어 덜어놓고 간을 더해 나랑 남편이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어른들도 간을 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식사하다 보니 출산하고 남아있었던 몸무게를 감량할 수 있었고,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아기가 주방에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지난주부터는 요리를 할 때 속도가 붙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정말 간단한 요리를 하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이제는 30분 안에 여러 메뉴를 만들 수 있다. 빠르게 여러 가지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날 보고 남편은 이제 내가 아기 밥하는 시간을 '냉부(냉장고를 부탁해)'라고 부른다.
엄마가 된다는 건 제너럴리스트 양성 과정 같다. 운전, 요리부터 시작해서 아기가 조금 더 자라면 교사, 심리상담사 등의 역할까지,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능력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다음 미션이 주어진다. 최근에 출산한 지인과 언제부터 일을 다시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언니는 엄마의 역할이 생긴 이후에는 언제든 일을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언니의 말대로 나 역시 백일 지나면 시작해야지, 모유수유 끝나면 시작해야지, 돌 되면 시작해야지 계속 미루어 오다가 아직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어린이집 가고 나면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운동을 할 때 적당한 수준으로 장비를 갖추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요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좋은 운동복을 사면 운동을 하러 가고 싶어지고 운동하는 동안 기분이 좋다. 요리 도구도 멋지고 좋은 것을 갖출수록 요리할 맛이 난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모두 스테인리스로 바꿨고, 유아식을 시작하면서 도마를 쓸 일이 많아져 나무도마로 바꿨다. 좋은 장비는 관리가 어렵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코팅 프라이팬보다 설거지가 어렵고 익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린다. 나무도마도 보드버터라는 걸 사서 주기적으로 칼자국 관리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과 나무도마는 매력이 있다. 물론 이런 즐거움도 시간과 체력이 여유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여유가 없을 땐 요리가 숙제처럼 버겁다. 조금만 더 마음 한 켠의 헛헛함을 외면하고 요리의 즐거움, 육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