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같은 결혼식
"결혼 같은 게 아니라, 결혼한 거야. 우린."
J가 말했다. 그래 나는 결혼했다.
4기 암환자인 내가, 40대 중반도 넘어선 내가, 드디어, 했다. 결혼이라는 걸.
얼마 전 우연히 이런 글을 봤다.
"나의 장래희망은 연애다. 그러니 아직 괜찮다." 사랑을 통해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고정순 '안녕하다')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막연하게 내가 바랐던 나의 꿈은 나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었다. 꼭 해보고 싶지만 이생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한 것들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욕심이 아닐까 싶던 일이 일어났다.
여행메이트로 스냅사진이나 찍자 했던 장난스러운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J의 손에-3000원짜리 이미 변색된-스테인리스 반지를 끼워주었다. 'Love is...' 사랑은 그런 거고 사랑은 그러지 않는 거랬다.
7년 전 암 선고를 받고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했었다. 한 번도 비혼주의였던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훌훌 떠날 수 있으니, 마음 한조각이라도 남겨두지 않을 수 있으니.
작년 말부터 올초까지 지인 여럿을 잃었다. 백혈병, 혈액암, 폐암, 심지어 자다가 심장마비로, 그들은 떠났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리거나 고작 서너 살 많은 이들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모두 건강한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떠나버렸다. 남은 건 '곧 보자.'는 지킬 수 없는 부질없는 약속 뿐.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M의 부고를 들었을 때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운동과 등산으로 단련된 M이 갑자기 작년 1월 백혈병에 걸렸다고, 마지막 항암을 끝내면 12월이니 봄 즈음에 보자 했다. 항암 중에도 기력을 회복하면 언제든 보자고 약속했지만 M은 좀처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가곤 했다. 각자 응급실을 통해 입원 후 했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M이 떠났다는 소식을 진해를 가득 메운 벚꽃 속에서 전해 들었다. 봄에 만나자더니 벚꽃 피는 계절에 떠난 M을 잃고나니 J가 생각났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나중'은 없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을 때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