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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의 추억

이디스 워튼 '간결함' 모방

by Aragaya Feb 16. 2025

대학교 3학년쯤부터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주 갔습니다. 1995년이네요. 그해 여름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살짝 '업'된 상태에서 말이죠. 당시 영어 원서는 교보 광화문점에 가장 많았습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가서 책장을 훑고 다니면 사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교양이 쌓이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죽치고 놀다가 마지막엔 펭귄판 할인 소설책을 한두 권씩 사 왔습니다. 펭귄 출판사 영어책들은 두께에 따라 2~4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찰스 디킨스, 허먼 멜빌, T. S. 엘리엇, 제인 오스틴, 키플링, 이디스 워튼 등을 모셔 왔네요. 허영심이 부추긴 충동구매였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그렇게 본가 책장에 쌓여간 책 중, 2025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뿐입니다. 몇 번의 책 정리, 나눔, 살처분에서 이 책만 생존한 이유는 얇은 두께 때문인 것 같아요.


90년대 중후반 종로서적, 영풍 & 교보문고는 나를 어설픈 현실에서 창창한 미래로 데려다줄 꿈의 공간이었습니다. 분야별로 층이 나뉜 종로서적은 좋아하는 작가 사인회 간 일이 생생합니다. 교보와 라이벌이었다 서서히 이인자가 된 영풍은 천장 고드름형 조명이 시그니처죠. 가장 아늑하고 고급진 분위기는 교보였고요.


지금도 한국에 가면 광화문 교보를 부러 들릅니다. 온라인 구매가 아무리 편해도 내게 교보가 주는 아늑함, 희망, '청춘의 애상'은 추억 소환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케인의 이디스 워튼 챕터를 읽으며 교보문고의 조명과 향기가 떠올라서 위 세 문단을 써봤습니다. 워튼의 간결하고 간소한(austerity, 절도, 엄격) 문장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환락의 집" 연재물을 책으로 엮을 때 '표현의 경제성, 더 간결한 묘사'를 위해 다듬었다고 합니다. 문장을 다듬을 때 그저 짧게 쓰는 것만이 대수가 아니라 워튼처럼 '응축'된 경제적 표현을 쓰는 게 효과적일 텐데, 그걸 성취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참고:

윌리엄 케인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


사진: Unsplash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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